부부 교환일기 by 김쥬둥
#26년 2월 25일
수요일
세상에 집안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과로써의 상태는 누구나 좋아하겠지만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게 집안‘일’이어서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미셸 투르니에 작가님이 이런 말을 남기셨다고 하죠.
“일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하면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다.”
당연하게도 집안일 또한 마치고 나면 피곤해집니다. 집안일이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는 명명백백한 증거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지 않은 상태 또한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집에 들어왔는데 상태가 개판 오 분 전이면 괴롭다는 게 증거 아닐까요.
물론 현대에 들어서는 다양한 기계들이 집안일을 도와주고 있긴 합니다. 세탁기부터 시작해서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등등. 하물며 전자레인지나 인덕션 같은 도구는 불을 피워 요리해야 했던 시대를 생각하면 천지가 개벽할 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아직 집안일에서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때로는 일이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는 발명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기술은 그 자체로 다시 필요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세탁기 덕분에 우리는 손빨래에서 해방되었지만, 더 자주, 더 많이 빨래를 돌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전에는 냄새만 안 나면 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얼룩 하나만 묻어도 신경이 쓰이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어째 우리의 시간은 전보다 더 부족한 기분이에요.
집안일에 대해서 나름의 고찰을 해본 제 소견을 덧붙여보자면 이렇습니다. 집안일은 대체로 열심히 하면 할수록 티가 잘 안 나고, 반대로 조금만 안 하면 티가 나는, 참으로 이상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마음먹고 뛰어들어도 완벽하게 끝낼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면 할수록 계속해서 아쉬운 게 보이고, 닦고 치우고 버려야 할 게 계속 생겨납니다.
휴일에 큰맘 먹고 대청소를 하려던 분들은 아마 잘 아실 겁니다. 책상 앞에서 버릴 것과 아닌 것을 골라내는 데에도 1~2시간이 훌쩍 지난다는 사실(물론 대체로 사진이나 편지, 명함, 장난감 같은 걸 보며 추억여행을 떠나는 데 쓴 시간이긴 합니다).
집안일이 힘든 또 다른 이유로는 보상이 없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깨끗해지거나 정리된 상태 그 자체가 보상이긴 합니다만. 문제는 혼자 사는 게 아닌 경우입니다.
집안일에 이름표를 붙여두지 않았을 경우에는 더러운 걸 못 버티는 사람이 집안일을 하곤 하죠. 누구나 인내할 수 있는 더러움의 임계점이 있을 텐데, 그 임계점이 높고 귀차니즘력까지 충만하다면 대체로 무적이라 칭할 수 있죠. 당연하게도 무적의 동거인을 둔 사람은 혼자 집안일을 하다 지쳐서 잔소리가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괴로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이름표를 붙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힘들기 때문이죠. 심지어 집안일이라는 건 완벽하게 50/50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는 노력이 서로를 더 치사스럽게 만들 뿐. 격일로 설거지를 하기로 했는데 하필 내가 하는 날에 그릇도 많이 쓰고 기름기 많은 냄비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이 설거지하는 날에는 기름진 식사를 안 하거나 외식을 하자고 은근히 요청할 수도 있죠. 그 속내는 상대방도 눈치를 챌게 분명합니다. 설사 어찌어찌 완벽하게 일을 나눴다 쳐도, 결국 상대방이 더 편해 보이고 내가 더 힘들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고로 집안일의 해법은 무엇인고 하니, 바로 로봇혁명입니다! 인간형 안드로이드가 우릴 해방시켜 주고야 말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들이 세상에 도래하지 않았기에 차선책을 내놓아야겠군요. 법이 모든 것을 처벌할 수 없기에 윤리와 도덕이 필요한 법이죠. 당장은 괴롭더라도 대화를 통해 함께 헤쳐나가는 수밖에요. 왜 집안일을 해야 하는지, 또는 너무 결벽증에 가깝다면 굳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말자거나. 서로의 기준을 맞춰가고, 고생하는 상대방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 앞머리를 예쁘게 자르고 온 연인을 보며 리액션을 해주듯, 깨끗해진 집, 세탁물, 설거지 등등을 보고 화려한 리액션을 해줍시다! 그 반응이 고생한 이에게는 많은 보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집안일도 하다 보면 나름의 재미가 있으니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것도 좋을지도요. 자신에게 맞는 집안일이 있다면 그걸 전담하는 것도 좋을 테고요. 참, 어려운 문제라서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혀가 너무 길어지고 있으니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뒷짐을 지고 먼 산을 바라보는 김쥬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