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전

by 호돌이

by 다슈니와 호돌이
image.png


고백하건대 저는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도 큰 편이지요. 타고난 성향도 크겠지만, 성장환경 또한 영향이 있으려나요.

아주 어린 시절을 빼면 기억하고 있는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한 동네에서 지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부터 중학교 졸업하기까지. 십여 년이 넘는 시간을 이사도 가지 않고 살았던 셈이지요. 덕분에 저는 초중고를 졸업할 때까지 전학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들 또한 대체로 겹쳤던 편이고요. 모두가 이미 친해진 곳에 혼자 떨어져서 뒤늦게 적응하는 일의 괴로움을 이제는 알기에, 참으로 축복받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학이란 것을 애써 상상해 보자면 대학에 처음 갔을 때, 군대에서 자대에 배치받았을 때, 취업하고 첫 출근을 했을 때. 군중 속에 나 혼자만 남겨진 기분. 집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사무치는 외로움과 서늘함이 교차하는 기분. 그런 기분이 아니려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잠을 잘 자는 편입니다. 하지만 집이 아닌 곳에서는 유난히 잠들지 못하곤 합니다. 모두가 잠든 밤. 혼자 뜬눈으로 지새운다는 것은 제법 외로운 일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있지 않은 때에는 더더욱. 영화 그래비티에서 아득한 우주 속에 떨어져 미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떠나는 행사 또한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교회의 여름성경학교라던가, 학교의 극기훈련, 수련회 등등 말이죠. 대부분의 친구들은 집을 떠났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들떠 있었지요. 저는 가슴을 내리누르는 막연한 불안감에 출발할 때부터 기분이 우울해지곤 했는데 말이죠.

제가 특별히 다른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이란 무릇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안전하게 여기는 본능이 있을 테니까요. 다만 익숙하고 안전한 것을 지루하게 여기고, 새로운 것을 불안보다는 즐거운 자극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압니다. 다슈니처럼요. 그래서인지 저는 여행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잠자리가 바뀌는 것도 싫어할뿐더러 낯선 곳에 가면 굉장히 신경이 곤두서는 편이라 금방 피곤해지고 예민해지기 때문일 겁니다. 다슈니와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는 뒤늦게 그 재미를 알게 되었지만요. 장소가 달라져도 다슈니와 함께 있으면 익숙하고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슈니와 손을 잡고 걸으면 그곳이 어디건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물론 스마트폰 덕분에 덜 불안한 것도 있고요. 뭔가 잘못되어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가짐도 새로 장착하게 되었고요.

꼭 여행이 아니라도 낯선 도전에 대해 생각하게 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김영하 작가님의 말이었습니다. 방송 알쓸신잡이었던가요, 아니면 에세이에 나온 말이었을까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새로운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특히나 먹는 것. 저는 먹는 것만 먹는 편인데, 오감의 새로운 자극과 경험이 삶의 다양한 지평을 열어줄 수 있다는 말에 설득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최대한 새로운 걸 먹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고수도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열심히 먹어보니 그 향을 즐기게 되었고요. 다른 하나는 이동진 평론가님의 말입니다. 사람의 취향에는 구심력이 있어서 가만히 두면 계속 좁아진다는 말.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고집쟁이가 되어가는 걸 느끼고 있었기에 의식적으로 낯선 것을 너그럽게 보려고 합니다. 물론 쉽지 않지만요. 제 소극적인 도전에 비하면 다슈니의 개척 정신은 그야말로 본받고 싶을 정도입니다. 서툰 것 같아도 결국 잘 해내는 다슈니의 낯선 도전을 보며 오늘도 의지를 불태워봅니다. 타고난 성향을 변명삼지 않고 새로운 곳으로의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해요.


현관문 앞에서만 위풍당당한 호돌이

월, 목 연재
이전 04화기억의 빈칸을 채워주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