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풀이 무성한 들판이 있는 역

서울은 미술관 녹사평역 프로젝트 후의 녹사평역의 모습

by 임다섭

스무살 때 처음 녹사평역을 방문했을 때의 첫인상은 거대한 우주선 안에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거대한 자연채광 돔과 마치 백화점에 있을 법한 좌우대칭의 에스컬레이터 구조, 화려한 유리 타일로 꾸며진 벽면은 ‘푸른 풀이 무성한 들판’이라는 의미와는 다르게 우주공간이나 인위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 때 당시 일반적인 역과 다른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 했지만 더위나 추위를 잠시 피하기 위해 머무르긴 했어도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진 못했다. 하지만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식물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이태원, 해방촌을 방문하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용산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문화예술공간으로 변화했다. 새롭게 변한 녹사평역이 과연 재미있는 우주선이 되었는지 부푼 기대를 가지고 녹사평역에 도착했다.



따듯해 진 역사 안

플랫폼을 나와 새로 단장한 녹사평역 지하 4층으로 올라오니 전에 비해 밝아진 역사 안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세탁을 한 것처럼 흰색의 역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녹사평역 프로젝트는 ‘빛’, ‘숲’, ‘땅’이라는 자연의 요소가 주제이다. 그래서인지 역 안은 흰색의 깔끔한 빛과 녹색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역 안의 벽면과 가구들을 모두 다 흰색의 유광의 소재로 하여 최대한 외부에서 들어온 빛을 사용해 밝게 하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 인공적인 형광등의 빛 역시 조소희의 ‘녹사평 여기…’라는 이름의 천정 설치 작품을 통해 다양한 빛깔을 가진 자연의 녹색을 체험 할 수 있게 하여 형광등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를 완화하였다.

특히 자연채광 돔과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원기둥 형태의 공간에 들어서면 더욱 따사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던 지하4층의 에이트리랜드스케이프와 그루스튜디오의 작품인 ‘시간의 정원’은 정말로 식물들의 공간이었다. 돔에서 나오는 자연광을 이용하여 음지식물들의 초록을 즐길 수 있는 쉼터이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어딘가로 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역이 아닌, 자연을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식물들을 이용해 전에는 없었던 위요된 공간을 만들고, 의자에 앉았을 때 시선이 식물들에게 있게 계획하였으며, 벽면을 은은한 청자색으로 한 것과 같은 디테일 때문에 더욱 그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하공간에서 식물들이 가득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하고 큰 인상을 줄 수 있다.

‘시간의 정원’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자연의 따뜻한 기운이 더욱 극대화된다. 바로 유리 나루세와 준 이노쿠마의 ‘Dance Of Light’ 때문이다. 흰색 익스펜디드 메탈의 벽을 복도에 둘러, 돔에서 나오는 빛이 마치 안개 속에 있는 빛처럼 반사되어 퍼질 수 있게 하였다. 따라서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올라가는 관찰자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의 빛 또한 섬세하고 미묘하게 변하는 모습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해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형태가 흰색 벽을 도화지처럼 비춰지는 모습은 외부와 실내공간을 서로 연결하여 삭막한 공간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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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사평 여기…>, <시간의 정원>, <Dance Of Light>

부자연스러운 여유를 느끼는 공간, 지하철역이자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

전체적인 역사의 분위기 밝고 따뜻하게 변화 시켰다는 점에서 녹사평역 프로젝트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히 지하철역 환경개선의 의미를 넘어 ‘문화예술공간’이 되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면 아쉬움이 있다. 새로 설치된 작품을 모두 느끼기에는 약간의 억지스러움이 필요했다.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의 모토처럼 녹사평역이 미술관으로 변화되었는지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술관이 어떠한 공간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술 작품 하나 하나가 공간의 중심이 되어 관람자들이 이 작품을 관찰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을 때 비로소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녹사평역에서 정희우의 ‘담의 시간들’이나 정진수의 ‘흐름’, 김원진의 ‘깊이의 동굴-순간의 연대기’가 예술작품으로서 공간에서 소비되어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 된다. 이 작품들은 사람이 빠르게 지나가는 동선에 사람들이 주목할 수 있게 하는 아무런 장치 없이 배치 되어 ‘작품’이 아닌 좋은 ‘디자인’으로 인식되어지고 소비되어지는 것 같다. 필자도 역시 처음에는 이 작품들을 주목하지 못하고 지나쳤었고 설명을 듣고 주의 깊게 역사 안을 둘러 보니 감상할 수 있었다. 또한 김아연 작가의 ‘숲 갤러리’ 역시 단순히 시각에만 의존한 작품이 아닌 사람이 공간 안에 들어와 적극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역사 안 동선이 고려되지 않은 채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귀퉁이에 설치되어 있어, 작가의 숲 안에서의 밀도와 시간, 빛의 표현을 감상하기 어렵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공간에는 시각으로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시각적인 작품을 설치하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공간에 움직임에 따른 체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을 설치 했더라면, 시민들이 좀 더 각각의 작품에 관심을 갖기에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아쉬움이 없기 위해서는 단순히 유휴 공간의 규모와 작품의 규모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성격과 작품의 성격에 대한 이해와 이 둘의 관계에 대한 숙고 위에서 대해 공간 전체 계획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미술관’으로서 녹사평역은 아쉬움이 있지만, 다양한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녹사평역은 어떨까. ‘반짝정원’, ‘시간의 정원’에서는 식물 상담소, 투어, 시민참여 전시 등 도시, 예술, 식물을 주제로 한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있는 지하철역에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문화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공간에 활기를 되찾아 줄 뿐만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를 증진하게 한다. 이러한 활동들이 자발적이자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선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이러한 활동들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분명 녹사평역은 ‘문화예술공간’이 되고 있음은 틀림없다.



녹색도시에 착륙한 우주선

녹사평역은 다양한 예술작품들과 문화활동들을 통해 밝고 활기찬 공간이 되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더 이상 단순히 거대한 무생물의 우주선이 아니라 마치 우주선이 녹색도시에 착륙한 것처럼 생명력이 있는 공간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존 지하철 역은 단순히 교통수단을 위한 공간이거나 지하상가와 같은 상업공간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녹사평역 프로젝트를 통해 지하철역이라는 도시의 인프라가 다양한 역할을 수용하고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이 새로운 녹사평역이 해방촌, 이태원, 용산공원 등의 주변 공간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우리에게 지하철역의 어떤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제시하게 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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