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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알프스 야리가타케(10)

위기...

by 슈퍼베어
혼자만의 여행에서의 위기...
외로움이나, 외지인으로 서의 서러움 또는 당혹스러움 정도일 것이라
그리고 차라리 그런 것이었으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난 고도 2,600미터쯤 위치에서 또 다른 여운으로 남겨야 할 일을 만들고 있었다.

셋쇼휫테 산장으로 가는 분기점에서 앞서가던 국립공원 직원의 휴식...

그들이 올라올 때 내가 쉬는 것을 보았을 테니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들을 지나쳐 쉬어야겠다. 이와 중에도 나만의 오기가 발동하는 것인가? 한편으로는 나만의 오기에 나의 체력이 아직 남아 있음을 느꼈다.

아침, 저녁으로는 산중의 싸늘함으로 한기를 느꼈으나 한낮의 강렬한 태양빛은 한여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9월 초의 이곳에서의 복장이 어떠했는지도 가늠이 되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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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리가타케 정상을 등지고 앉아 쉬는 곳의 배경...

이 글을 쓰고 있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저 시간, 저곳에서 산을 타고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듯하다.

어찌나 시원하고 달콤하던지...

어디 그늘만 있었으면 한숨 달콤한 낮잠을 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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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꺼내 든 행동식...

고도 때문이었는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봉지에 웃음이 나왔다. 그냥 쑤셔 넣어두어도 안의 내용물 망가짐 없이 저절로 잘 보관이 되니,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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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식을 먹으며 제법 쉬었는데도 심박은 140을 넘고 있으니, 내 몸도 행동식의 봉지와 다를 바 없다. 시간이 오후 1시에 되어가니 나도 점심도 어느 정도 해결하고 다시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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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리가타케 정상...

참으로 얄궂게도 얼굴을 내밀다 가리고를 반복하며 애를 태운다. 제대로 보려면 올라와 보라는 듯...

뾰족하게 콧대 높은 녀석임에 틀림없다. 점점 더 나에게 승부욕을 발동시키는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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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리가타케 정상을 처음 오르셨다는 스님의 베이스캠프...

정상 공략을 위한 적정한 위치와 베이스캠프로서 손색없는 장소였다. 다들 저 굴속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급 할 것 없는 나에겐 내려오면서로... 뒤로 미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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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리가타케를 오르는 오른쪽 사면에는 아직 녹지 못한 눈이 이었다. 9월에도 녹지 못한 눈... 만년설?

황무지 같은 돌밭에서 그나마 볼거리를 제공받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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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리가타케 정상이 온전하게 보인다. 셋쇼휫테 산장의 모습도 가깝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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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거리는 1킬로...

이쯤부터는 무념무상의 세계로 들어선듯했다. 어지간히 수도를 해도 쉬이 들어갈 수 없다는 세계...

지금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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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땐...

가방을 벗어두고 물 한 병만 챙겨 저곳에 올라 저 넘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진을 보니 그런 생각으로 찍어 둔 듯한데... 아무래도 그때 제정신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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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이 이정표를 보고 야리가타케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쉬이 결정하지 못하고 한참이나 그렇게 서서...

세상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한 아이처럼 눈만 껌뻑이며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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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800미터 남은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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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500미터 남은 지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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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를 들고 무언가를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못했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저 아래 점으로도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리고 이 순간 나에겐 또 다른 행운이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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