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트레킹의 시작
혼자 떠나는 여행
나에게 묻고, 나에게만 결정을 구한다.
외로울 것 같지만, 외로울 겨를이 없다. 특히나 이국땅 낯선 곳에선 더욱 그랬다.
간밤에 맥주를 한 개 더 먹고서야 잠이 들었다. 자판기가 있는 곳에 캔의 수거통이 있었기에 더욱 부담 없이 북알프스에 무사히 도착한 첫날밤을 즐겼다. 아마 뒤처리의 부담감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맥주캔 쓰레기를 다시 짊어지고 돌아가야 했다면 절대 구입해서 마시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맥주 한 캔에 배가 부르고 이내 취기가 돌았다. 100미터 떨어진 화장실에 다녀와선 쉬이 잠들지 못했다.
웬만해선 잠자리가 바뀌었어도 어제와 같은 긴장감의 연속적인 일들과 밤늦은 시간까지의 걸음으로 녹초가 되어 바로 깊은 잠에 빠졌어야 했는데, 한참이나 뒤척이다 잠이든 모양이다.
침낭 지퍼도 전부 올리지 않은 채, 침낭이 이리저리 몸에 둘둘 말린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예상외로 몸은 개운했다. 어제와 다르게 공기도 차갑지 않게 느껴졌다. 한 밤중에 도착한 캠핑장의 모습이 궁금했기에, 눈을 뜨자마자 텐트 밖으로 나왔다.
도쿠사와엔에서 한참이나 걸어와 텐트를 쳤던 것으로 느껴졌는데 아침에 일어나 확인하니 캠핑장 가장자리 끝 길 옆에 도쿠사와엔 바로 앞 아닌가? 우리네 정서에 맞게 그래도 난 잔디 위가 아닌 한쪽의 잔디가 없는 곳을 골라 숙영을 했는데 주변의 모습을 보고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알록달록 자유스럽게 숙영하고 있는 일본 캠퍼들의 텐트들, 대부분 몽벨 텐트...
일본 북알프스 이곳에 와서 느낀 건 일본의 백팩 텐트는 대부분 몽벨과 아라이 텐트들이었다. 그들 나름대로의 최고의 브랜드이니 자부심일까?
나도 이곳에 오면서 아라이 사의 X-raiz텐트에 무척이나 관심이 쏠렸다. 일본에서 직접 만드는 제품으로 일 년에 몇 동 만들어 내지 못했지만, 언젠가부터의 인기로 인해 자동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듯 대량으로 만들어져 나왔다. 난 그때 그 당시의 가내 수공업처럼 만들어진 텐트를 얻고 싶었다.
아무튼 아침의 그 모습은 내가 그렇게 바라던 숲 속의 숙영지였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이곳에서 하루 더 숙영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걸어 나와 북알프스의 고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곳을 보고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찾았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은 고산의 최상부 머리만 햇살이 내려앉은 모습을 하고, 지나는 구름이 머리에 걸려 흩어지는 모습을 한동안 넉을 놓고 바라만 보았다. 맑은 하늘에 흩어져 퍼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제의 고뇌는 모두 사라졌다.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왔는지가 명쾌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때의 기분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저곳을 향해 가고 싶을 뿐이었다.
나보다 먼저 텐트 밖의 풍광을 넉을 놓고 바라보시는 일본인이 보였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제일 먼저 보이는 저 풍광에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한참이나 그냥 이렇게 서서 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북알프스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숙영지를 정리하고 배낭을 다 꾸려 출발 준비를 마쳤다. 길 한쪽에 배낭을 두고 다시금 저 멀리 펼쳐진 북알프스의 모습에 빠져보았다. 이젠 다른 분들도 하나둘 텐트 밖으로 나와 풍광을 바라본다. 오전 5시쯤 시간이었으나 우리나라와 같은 시간이지만, 우리나라보다 해가 일찍 떠오르는 듯했다. 태양의 햇살이 벌써 산머리에 걸려 붉게 보였으니 말이다.
오전 6시도 안 된 시간이지만 해는 이미 산머리를 내려오고 있었다. 산의 위쪽부터 점점 밝아져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배낭을 정리하고 길을 떠날 채비를 마무리했다.
2일 차 계획대로 새벽 4시에 일어나 길을 잡아야 했지만, 어제 밤늦게 도착한 탓에 한 시간 정도 늦게 일정을 시작했다. 계획상 아침은 야리사와 롯지에서 먹어야 했지만 일정은 수정되어야 했다.
아침은 요오코 산장에서 먹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고, 전날 갓바바시 상점에서 구입해두었던 행동식을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었다. 오늘 계획대로라면 최대한 야리가타케 산장엔 도착해야 한다. 그러려면 음식을 계속 보충해 주어야 한다. 스틱도 없는데 자칫 체력이 떨어지면 쉬이 길을 걸을 수 없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야리가타케 산장까지 가는 길 중 요오코, 야리사와, 셋쇼우휫테 산장이 있으니 물 보충도 중간중간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판단이 섰다. 또한 먼저 다녀오신 분들의 이야기로 2,500미터 고도부터의 계곡물은 떠마셔도 된다 들었다.
둘째 날 초반부터 짐을 늘리지 않겠다는 판단하에 물이 부족하면 계곡물이라도 떠 마실 생각을 했다. 스틱도 없는 상황인데 자칫 초반에 체력이 소진되어버리면 말도안 통하는 산중이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곳이기에 더욱 난감한 상황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어었다.
아직 2천 미터 이상의 고도에 올라서 본 적이 없었기에, 체력이 얼마나 버텨 줄지도 관건이기에 최대한 체력을 아끼며 걷고자 했다. 평지길은 최대한 빠르게 걸어 시간을 단축해서 쓰고, 나머지 오르막부터는 천천히 걷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까지도 스틱을 잊어버린 나 자신을 얼마나 자책했는지...
오늘의 첫 이정표...
요오코까지 60분, 거의 평지길임을 알기에 조금 속도를 내어 걸었다.
요오코 산장에서 아침을 먹으며 충분히 쉬고 다음 걸음을 걸을 계획이었다. 결심이 선 그날 아침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고, 숲 속 아침의 청량감으로 전날의 긴장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아침에 마주친 일본인들은 저마다 아침인사를 건넸고, 나도 일본 아침인사 오하이요우 고자이마스 답했다.
북알프스에서 만난 일본인들... 나이가 많아 보이던 어려 보이던 산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인사를 하며 지난다. 우리 내의 산길도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건네며 지났던 기억이 역력한데, 최근엔 이런 일도 드문 일이 된 걸 모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도 이들 앞에서 무색하게 느껴졌다.
도쿠사와에서 요오코로 가는 중간에 이름을 알 수 없었던 다리가 나왔다. 마음은 급했지만 다리 중간에 서서 북알프스의 계곡과 풍광을 느껴보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숲길 다리...
나무로 된 출렁다리는 무거운 박 배낭과 나의 몸무게로 인해 한걸음 한걸음마다 출렁거렸다.
너무나도 깨끗한 계곡물이 다리 아래로 흐른다. 그리고 주변의 적막감 때문인지 얕아 보이는 계곡물의 소리는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펼쳐지는 주변의 병풍처럼 둘러싸여 펼쳐진 북알프스의 고봉들, 맑은 하늘...
얼마 전 일본에서 있었던 원전사고의 불안감 따윈 생각나지 않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야 드디어 이곳 북알프스의 안부로 들어온 것이 실감이 난다. 이들의 자연 앞에 매료되어 버렸다.
난 앞으로 이틀 동안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 날의 그 발걸음이 아직도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