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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알프스 야리가타케(4)

북알프스의 첫 번째 밤하늘...

by 슈퍼베어
혼자 걷는 길
두근 거림과 설렘은 바로 눈앞의 손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인해...
'불안감과 긴장감'이 충만한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묘진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은 닫혀있지만, 환하게 불 켜진 내부의 사람들은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문을 두드려 도움을 청해보려 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처럼 저마다 자기 일만 할 뿐이었다.

한없이 서글픈 마음뿐이었다. 마음을 다시 고쳐 잡고 산장 앞 벤치에 앉아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한 개 구입했다 - 일본은 참 어디를 가나 자판기 설치는 잘되어있는 것 같다 - 시원하게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중 이곳에 와서 산행하시는 첫 번째 분을 만났다.

어찌나 기쁘던지... 해드 렌턴 배터리가 다 되었는지,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배터리를 찾더니 바로 교체하고 일어나시려 한다. 난 바로 그분께 다가가 도쿠사와 캠핑장까지 남은 거리를 물었다.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은 더 가야 한다"는 답변이다. 후~ 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더니, 살짝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방향을 잡고 하산로를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다시 일어나 걸었다.

좌우 폭이 넓은 길이지만 우측의 산죽 넘어 높은 나무숲 사이로 새 울음소리와 알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마저 들렸다. 신경이 너무 곤두섰다. 잘못 디뎌 등산화 부딪히는 소리에도, 놀란 가슴을 쓰려 내려야 할 만큼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얼마나 쉼 없이 걸었는지...

해드 렌턴의 건전지 불빛도 희미해져 갔다.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 배터리 체크를 안 한 것이 화근이었다.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어 카메라 라이트 빛으로 해드 렌턴을 대신해서 걸었다. "핸드폰 충전할 곳도 없는데 이렇게 배터리를 소모해 버리다니" 이렇게 난 두 번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젠 한 손으로는 배터리를 들고 걸어야 했다.

하지만 쉼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아득히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입가엔 내 몸에서 내뿜는 열기와 밤이 되어 추워져 버린 숲 속의 온도 차이가 느껴지는 입김이 내뿜어져 나왔다. 점점 더 가까워져 오는 건물의 불빛이었다. 도쿠사와 산장에 도착한 것이다.

도쿠사와 산소

나중에 이곳에서 만나게 된 분께 산소? 롯지?의 차이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둘의 차이를 비슷하다"는 답변뿐이었다. 일본의 산에서 대피소 개념의 산장들은 개인이나 업체의 소유이니 이름 붙이기 나름일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사실 두 용어의 구분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언급해 본다.


아무튼 도쿠사와의 첫 산장은 바로 지나친다. 여기서 200미터 정도 더 진입해서 캠핑장이 있는 도쿠사와엔 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장을 지나면서부터는 캠핑장의 모습이 보였다. 멀리 도쿠사와엔의 모습이 보였기에 체크인을 위해 캠핑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의 텐트에서는 불이 꺼진 상태였다.


우리의 모습과는 다르게 적막하리만큼 조용한 캠핑장...

지금 이곳에서 적막을 깨고 소음을 발생하는 건, 무모하게 밤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나의 발걸음 소리뿐이었다.

도쿠사와엔 앞 도착!

이미 시간은 11시가 넘은 시각...

캠핑장 체크인이 가능할까? 이곳에 도착은 했지만 걱정이 앞선다.

오후 11시를 훨씬 넘긴 시간임에도, 도쿠사와엔의 직원은 이국에서 온 무모한 백패커를 친절하게 맞이해준다. 얼마나 고맙던지...

그리고 무모한 백패커는 친절하게 받아준 직원에게 다시금 please~를 연발하며 간청하는 부탁을 들어주었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아리가또를 연발하며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캠핑장 숙영 체크인

사실 이때에는 가스보다는 헤드렌턴의 배터리가 더욱 간절했다. 아직 남아있는 일정에서 어둠이 내리기 전에숙영 결정에 시간적 제약이 될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도쿠사와엔 프런트 데스크 전경

"숙영은 어디서 하면 되냐?"는 질문에, 뭐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듯 웃으며... 잔디 위 아무 곳에서나 하란다.

하기사 이렇게 깜깜한 밤에 어디가 어딘지도 분간이 안되는데 괜한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쿠사와엔 입구 전경

도쿠사와엔 입구로 나와 밖을 보니 컴컴한 곳으로 들어가 텐트를 펼치기엔 무리가 있을 듯보여, 도쿠사와엔 불빛이 비치는 한계점까지 걸아와 텐트를 펼쳤다. 물론 옆의 다른 텐트에 방해가 되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면서 최대한 정숙하게 숙영 준비를 했다.

숙영 준비를 마무리하고 하루 종일 신고 있던 등산화를 벗었다. 발이 편안해지니 이내 몸도 한꺼번에 긴장감이 풀어진다. 그대로 누워 잠에 들고 싶었으나, 도쿠사와엔 바로 옆에 보였던 자판기가 생각났다.

일본에서의 자판기... 너무나 고마운 존재 임에는 틀림없다. 물과 함께 이온음료도 보였지만, 그중 제일 나의 시선을 끄는 건 캔맥주였다.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캔맥주 한 개를 손에 넣은 이 만족감은 최고였다.

뽑자마자 시원하게 한 번에 들이켜 버렸다.

이때가 아마 "일본의 북알프스 트레킹 중 맥주와 함께 하게 될 것"이라는 서막이었다.

얼마나 쉼 없이 걸었는지...

입에서 나오는 입김과 온몸에서 나오는 땀의 열기가 자판기의 불빛에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고, 갓바바시에서 구입한 몇 가지를 챙겨 먹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그제야 허기가 몰려왔다. 식수장에서 물을 길러와 따듯한 국물의 라면 생각이 간절했지만, 몸은 이미 천근만근...

내일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는 부담감도 작용했을까? 이내 모든 걸 내려놓고 잠을 청해야 했다.

침낭 속에 몸을 넣고 잠시 누었을 때쯤, 다시 발동되는 나의 생리 현상 때문에 다시 일어나야 했다.


화장실을 찾는 순간

내가 자리 잡은 곳은 화장실과 100M 떨이진 곳이었다.

100미터 떨어진 화장실을 다녀온 후 다시 잠들기까지는 이런저런 생각과 뒤척임 속에 쉬이 잠들기 어려웠다.

내일 야리가타케 정상을 갈 수는 있을까?

스틱도 없는데 박 배낭을 메고 얼마나 진행할 수 있을까?


이미 돌아갈 비행기를 변경하기엔 늦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자!

아직 나에겐 이틀의 시간이 남아있지 않은가?


혼자였기에 나에게만 물어야 했고...

나에게만 허락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의 밤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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