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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알프스 야리가타케(8)

야 리사와 롯지...

by 슈퍼베어
백패킹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서면서부터 길을 시작하는 느낌은 언제나 최고조로 엔도르핀이 솟구치는 것 같다. 하지만 배낭의 무게가 느껴지고 순탄했던 길이 언덕이 되고 거칠어지면서, 내가 이 길을 어쩌려고 나섰나 하는 의문을 갖는 시작점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의문은 후회로 돌아오고 이내 다시 체력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내 자신을 책망하기에 이른다.

산은 누구에게나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힘듬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차이는 사람마다 달라서, 산을 즐기는 느낌과 생각도 각각 다르게 다가올 것이라 들어왔고 나 또한 그 생각에 동의한다.

나도 지금 일본의 북알프스를 즐기러 왔다. 하지만 이제 시작된 난관이 나를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야리사와 롯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침 햇살이라기보다는 강렬한 한낮의 태양의 열기가 느껴졌다. 일단 가방을 벗어던지듯 의자에 내려두었다.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정수리부터 이마까지 솟아나는 땀은 비 오듯 내렸고 온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식수장에 물이 얼마나 차갑던지, 그 물이 계곡의 물이거나 빗물을 정수했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때부터였던가? 나는 이곳 북알프스 에서 물갈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계곡의 물을 마셨던 것 같다.

야리사와 롯지 전경

롯지안으로 살짝 들여다보았으나, 안쪽에서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나를 지나쳐갔던 산악구조대 복장의 분들과 회의 중인 듯 진지한 분위기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사실 대화 내용을 들어도 알 수 없으니 웃음기 없는 그들의 대화하는 모습 자체가 진지해 보였다고 해야 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내부에서 사진 촬영을 할 생각을 못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쪽에 보관된 배낭들이었다. 이곳 롯지에서 숙영을 하고 간략하게 챙겨서 야리가타게를 다녀오는 것이라 판단이 들었다. 그것이 아니면 굳이 이곳에 배낭을 맡겨둘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본 후 밖으로 나온 후 나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 시간은 오전 9시 정도이니 배낭을 여기에 맡겨두고 빈 몸으로 야리가타케를 다녀오는 것에 대해서였다. 야리가타케까지는 5킬로 거리...

배낭 해드로 최소한의 짐을 꾸려 다녀와도 어떻게든 저녁 무렵까지는 다녀올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야리사와 롯지 입구

그러나 이곳까지 짊어지고 올라온 나의 숙영 장비들...

저 위의 야리가타케 산장 3천 미터급 고산지역의 캠핑장에 하룻밤 숙영 해보는 것을 꿈꾸며 목표로 삼았으니 꼭 그 작은 목표를 이루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또한 이른 아침부터 야리가타케를 향해 움직이는 것도 야리가타케 산장의 캠핑장 숙영 사이트는 30동 자리 정도 여서, 늦게 도착하면 만석으로 숙영을 못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던 터였다.

부족한 식수 보충을 하고, 다시 배낭을 울러멨다.

등산로 옆의 나무에 맺힌 빨간 열매가 탐스러워 한 장 남겨보다. 이제 제법 가까이 보이는 북알프스의 봉우리들... 그 위로 구름이 지나가면 더없이 파란 하늘만 남았다.

강진으로 인하여 발전소의 방사능 유출 문제를 겪는 나라라고 일절 생각나지 않는 그런 자연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는 것이, 그리고 그 자연을 인위적인 구조물을 최소화하고 그대로 지키려고 하는 그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등산로 옆 너덜지대의 바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보인다. 물론 낙석 지역이면 주의하라는 안내 문구는 있지만 그에 대해 인위적인 안전 보강 물은 없었다. 만약 저 중에 한 개라도 굴어와 떨어져 맞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구간이 아닐 수 없다. 살짝 겁먹은 나의 걸음은 빠르게 이곳을 지나쳐 갔다.

현재의 위치 2,000미터 고도...

9월 초 고산 날씨라면 어느 정도 가을로 접어든 선선한 날씨를 보여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 나의 오판은 바바다이라 캠핑장에 도착해 때쯤엔 확연히 들어났다. 내가 여기 도착하기 직전 주간에는 대형 태풍 2개가 한꺼번에 일본 열도를 지나갔다. 태풍이 지난 하늘은 더없이 깨끗한 여름날의 강한 햇살을 내리 쬐이고 있다.

바바다이라 캠핑장 벽에 무슨 표식이 있긴 한데, 너무 덮고 그늘이 없어 사진만 남기고 빠른 이동을 했다.

바바다이라 캠핑장으로부터 야리가타케까지는 5킬로 거리가 남는다. 이곳부터 시작되는 멋진 북알프스의 고산 풍경에 압도되며 트레킹이 시작된다. 가미코지로부터 십여 킬로를 걸어온 이곳이지만 아직까지는 야리가타케의 뾰족한 봉우리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여기에 오려고 계획했을 때에는 가미코지 초반부터 하늘이 열리면 바로 야리가타케의 모습을 보면서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 한참이나 올라왔는데도 아직 그 모습 조차 육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다시 한번 북알프스의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 아직 숙영 텐트가 몇 동 그래도 였던 것을 보면, 북알프스의 연봉들을 종주하며 즐기는 트레커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야리가타케만 다녀올 거라면 이런 날씨에 여기서 숙영을 했을 이유가 딱히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저 그들이 부러웠다. 수려한 자연과 함께 고산지역을 경험 할수 있는 곳이 있으며, 적당한 지역에 캠핑장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우리내와 또 다른 모습이 있다. 이곳까지 오면서 등산로에서 작은 쓰레기 하나 보지 못했다. 더욱이 이곳 쓰레기통 하나 없는 캠핑장에서 조차 쓰레기 없이 그저 황냥하게 마른 흙먼지만 날릴 뿐이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저 저들의 의식 수준일까? 민족성일까?

아무튼 무슨 이유가 되었던 그저 저들의 그것이 더없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바바다이라 캠핑장 전경

오전 9시 32분...

생각보다 늦은 걸음으로 이동했던 모양이다. 1킬로도 안 되는 거리였고 오르막도 거의 없는 구간을 너무 지체되어 걸었다.

지금까지의 등산로는 시원한 계곡을 옆에 두고 걸었다면...

이제부터의 길은 멋진 고산 조망이 고개만 들면 펼쳐지는 길을 걸었다. 이곳 북알프스 점점 더 들어오면 올수록 나의 눈과 마음을 빼앗아 버리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나는 이 길을 걷는 내내 "이런 길을 또 언제 걸어보겠나?"라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저 멀리 내려오시는 한 분의 트레커가 멋진 풍광과 어우러지며 멋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다시 힘이 솓았다. 걸음은 오히려 가벼워졌다.

이곳에서부터 표식은 바위에 그려진 "화살표"나 "O"표식을 참조하며 걷는다. "X"표식으로 위험을 표시해두었으니 이점도 유의한다. 우리네 갔으면 표시판을 분명 세워두었을 것이다.

그것 또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최소한의 인위적인 것만, 최소한의 필요한것만 취한듯 보였다.

우리도 우리의 수려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인위적인 편리함 보다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이다.

고산의 봉우리들이 구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비록 사진의 노출을 제대로 맞추질 못했으나, 아직 채색되기 전 캠퍼스의 그림처럼 펼쳐진 그 풍광에 이곳을 걷는 트레커라면 한참이나 서서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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