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리가타케와 첫인사...
풍광이 너무 좋아 넋 놓고 멍하니 한동안 말없이 오랜 시간을 혼자 앉아있어 본 건 처음인듯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과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아 보는 것이... 이 넓은 세상에서 이제야 작은 울타리 밖으로 나왔을 뿐인데, 벌써부터 세상을 전부 열어본 듯한 착각에 빠지고 있다.
태양의 빛이 산머리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한다는 느끼면서부터는 더욱 빠르게 밝아져 북알프스의 모습은 중턱까지 환한 모습을 한다. 서울서부터 공수해온 우리의 정서 깊은 냄새의 라면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리액터에 라면이 끓어 넘치치 않게 뚜껑을 열어놓고 준비를 해서인지 금세 넘칠 것 마냥 끓는 국물이 방울방울 올라오기 시작했다. 역시나 산행 중 라면의 맛은 그 어디에서 먹는 것과는 다른 풍미로 산객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북알프스 트레킹을 마음먹고서부터 준비하게 된 것 중 하나... 일본의 간편 조리음식
그중에서 백반이라는 밥이 그나마 맛이 좋다 하여 이날 처음 먹을 준비해봤다. 사실 간단 조리식 밥맛은 햇반이 제일 내 입맛에 딱이긴 한데, 조리된 밥의 무게는 장거리 트레킹에 준비해 오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전투식량을 준비했다가 강한 조미료 맛의 싫증으로, 이것을 준비했다.
간편하게 조리된 봉지 안의 밥을 보니 꽤나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집에서 정성 들여 막 만들어진 밥의 맛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저급의 맛이지만, 산중에서 간단하게 요기하기엔 딱 인듯한, 딱 그 정도의 맛으로 라면 국물에 말아 허기를 넘어 배에 가득 포만감을 안겨준다.
풍광을 보면서 천천히 식사 마치고 배낭을 꾸리니 계획된 시간이 넘어섰다. 북알프스의 풍광 외에 다른 것은 하산길에 천천히 보기로 하고 아쉬운 마음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이번 원정길의 목표점을 위해 본격적으로 시작될 오늘의 길을 다시 걷기로 했다.
오른쪽의 야리가타케 방향과 왼쪽의 처가(?) 다케 방향 분기점...
지금까지는 평탄한 평지 수준의 길을 걸었다면, 이 분기점을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고도가 올라간다. 초반은 울창한 숲 내음 가득한 길이 이어졌지만 그 분위기에 취해 고도가 오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쯤엔 조금씩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오늘 걸어야 하는 거리는 총 15km 이상이다. 거리도 거리였지만 야리가타케 산장은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3천 미터의 고도이다. 2천 미터 이상의 고도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3천의 고도에 고산병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들었던 터라 걱정이 조금 앞선 것은 사실이었다.
무엇 때문에 부러져진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한 굵기의 거목이 등로옆으로 부러 저 있다. 그 사이사이로 인위적인 간벌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안전 때문에 조치를 취한 듯보인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북알프스에서의 인위적인 모습이 오히려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해살이 산머리를 돌아 땅에 내릴 때쯤엔 오전의 한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 길을 걷고 있는 트레커에게 한낮의 열기처럼 느껴져 땀을 쏟아 낸다.
9월 초... 아직은 초가을이라 부르기엔 한낮의 열기가 제법이다. 등산로 옆으로 작게 떨어지는 차가운 계곡의 물줄기가 에어컨만큼이나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 아침의 숲길...
숲에서 느껴지는 청량한 맑은 공기와 숲 내음은 트래커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고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는 수량도 많고 가까이 걸으면 서늘함이 그대로 느껴져 온다.
한참이나 계곡 옆 등로를 걸어 오르다 보니 한자표기로는 1번째를 나타내는 듯한 이정표가 나왔다. 나중에 2번째까지는 본 것을 기억했으나, 그 후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야리사와로 가는 길목에 있던 힘 찬물 줄기와 계곡 소리가 더욱 우렁차게 들리던 등산로... 이 길을 걷는 내내 정말 마음은 편안했다. 숲과 계곡, 등로가 잘 어우러진 그러나 짧지 않게 충분히 느낄 만큼 만족스러웠던 길이 나왔다.
이런 계곡길이 한동안 이어지길 바랬는데... 계곡을 끼고 걷는 길이 끝날 때쯤에서부터 고도가 급격하게 시작되는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한참이나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갑자기 시작된 오르막에 호흡은 더욱 거칠어졌고 잃어버린 스틱을 한없이 원망하고 또한 그런 나 자신을 얼마나 책망하며 걸었는지 모르겠다.
계곡 옆 등산로가 끝나고 숲길 오르막이 한참 이어질 무렵 첫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은 턱까지 차올라 한걸음도 발을 뗄 수 없었다. 앉아 쉬다 다시 걷다를 반복하기를 수회...
저 멀리 위쪽에 산장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뒤따라왔는지 공원 직원 차림의 두 분이 올라와 파이팅! 을 외쳐준다. 나의 대답은 "감사합니다~"를 외쳤고 그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더니 이내 올라가버렸다. 그제야 여기가 일본땅임을 인지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야리사와 롯지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많이 지체된 시각이었다.
요코산장을 출발해 4킬로가량의 오름 구간을 어찌 걸어왔는지 아찔했다. 그러나 앞으로 5킬로 남아있음에 위안을 했다. 그 남아있는 5킬로의 길이 어떤지도 모른 채... 그 순간은 그렇게 생각했다.
야리사와 롯지엔 하산하는 사람들과 야리가타케로 향하려는 분들로 꽤 많은 분들이 계셨다. 하기사 이곳에 온 후로 트래킹의 적정한 시간대는 처음이니 사람이 많았다 느꼈다.
그리고 이곳 야리사와 롯지에서 저 망원경을 통해서 야리가타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본 야리가타케...
그날 난 그 모습이 꼭 보고 싶어 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