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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n Mar 06. 2021

이사의 우울함, 그리고 고양이.

행위의 문제, 집의 문제, 그리고 고양이의 문제.

이사를 했다. 두 번째 밤이 지나 새 번째 동이 트기 전의 새벽, 우렁찬 사이렌이 울렸다. "화재 발생. 모두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너무 급하지는 않게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밖으로 나오니, 아마 못 해도 70세대 정도는 될 것 같은 오피스텔 밖에는 나 포함 단 세 명만이 나와 있었다. 몇 분 동안 우렁차게 울리던 사이렌이 꺼지고 엘리베이터를 타자, 무질서하게 붙어있던 수많은 공문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최근 발생한 화재경보 오작동은 ~~~ 의 사유로 발생하였습니다."


올해 입주가 시작된 새 건물에서 벌써 못 해도 두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사'라는 행위로부터 파생된 우울함을 어떡해야 하나, 라는 걱정을 품고 잠이 들었었는데, 그것을 겉잡을 수 없이 증폭시키는 알람이 이 새벽에 울렸다.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도, 이사로 인해 우울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이사를 하게 된 원초적인 이유였다. 전에 살던 집의 월세가 비쌌고, 계약이 갱신될 때 마다 올릴 수 있는 상한선 5%를 착실히 지키는 집주인이 있었다. 집주인이 법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으나, 그 상한선을 지킴과 동시에 본인이 일하고 있는 보험에 가입하라는 은근한 압박이 더해지면 '집주인'이라는 이슈는 생각보다 커진다.


집 자체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싫어하지도 않았고, 근처의 동네도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저 돈 때문에 이사한다는 모양새가 정말 싫었다. 좀 더 자의적으로, 좀 더 내가 나아지고 잘나지는 방향으로 이사를 하고 싶었다. 그때 생각난 이유가, 바로 고양이었다.


살던 집의 계약서 조건 상 반려동물을 들일 수 없었다. 그 뿐 아니라 동물을 들이기엔 집이 너무 좁았고, 그러다 보니 동물에게 위험할 수 있는 환경이 많았다. 창 밖 풍경이라고는 골목 지나 솟아있는 고층빌딩의 벽 뿐이라, 창밖을 보기 좋아한다는 고양이에게 어차피 좋은 환경 같지도 않았다. '그래, 고양이를 키우게 되든 키우지 않게 되든,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는 곳으로 가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에 집착하는 이유는, 기회가 되면 이전 글들을 윤문 세탁 하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후는 충동적이고, 급하고, 빨랐다. 많은 차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나에겐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있다. 해결되지 않은 일이 눈 앞에 있으면 아직은 미칠 것 같다. 정도가 심하지 않았는데, 요즘 통 심해졌다. 집주인에게 이사를 가겠다고 통보를 하고, 살던 동네에는 마땅한 매물이 없음을 확인하고, 옆동네에 가서 괜찮아 보이는 조건의 집을 처음 보자마자 바로 계약을 해 버렸다. 첫 입주하는, 살던 동네에서 가까운, 고양이를 키울 수 있고 창가의 시야가 트여보이는 집이었다.




둘째 문제로, 막상 와보니 그 새 집이 마음에 들지 않더랬다. 너무 앞뒤 고려가 없이 급하게 일을 처리한 결과이리라. 입주 날(그러니까 그저께), 엘리베이터를 타니 온갖 공문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이 집은 하자가 꽤 있는 집이라는 것을 대변하는 듯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공간에 들어가 보면, 이전 집보다 훨씬 넓어보이던 그 집은 사실 그리 넓지 않았다. 골목을 앞에 두고 15층에 살다가 대로변의 2층으로 오니 바깥의 소리가 정말 잘 들렸다. 지하주차장에서 주차타워로 바뀐 주차환경은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이 좋지 않은 집의 첫 인상을 주변 지인들에게 말했다. 다른 모든 것에는 괜찮다고 곧 적응할거라고들 말했지만, 다들 주차타워에는 혀를 내두르는 반응이었다. 그 순간 이후 몇 시간을 혼자, 마치 내가 이 집에 사는 기간 내내 주차타워에 주차만 하면서 살 것 처럼 그 스트레스 상황을 곱씹고 곱씹게 되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한심해 했다. 한심한 일이니까.


그에 더해, 오가며 보이는 풍경 속에 어찌나 많은 이들이 담배를 피고 있던지. 미안한 말이고 잘못된 편견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평생 담배를 피워본 적 없는 비흡연자에게는 굉장히 불편하고 불량해보이는 풍경이다.




셋째로, 실체를 알듯 모를듯 한 외로움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이웃의 무언가들로부터 멀어진 것, 내가 좋아하던 동네의 사람들과 거리는 비슷하지만 '행정적으로 다른 동네에 있다는 것'이 주는 외로움인가 싶다. 내가 좋아하던 이웃의 무언가들을 대체할 만한 새 동네의 무언가들이 보이지 않는다. 섣부른 예견일테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그 대체재는 이 동네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것들에 정 붙이게 될 것이라고들 이야기하겠지만, 그리고 그럴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는 높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눈에도 귀에도 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이전 동네에 살면서 산책을 그리 즐겨하지 않았다. 최근 이틀간 굳이 이전 동네를 찾아가 걸었다. 모르긴 몰라도, 적어도, 2021년 들어서는 이전 집에서 두 달 살면서 이전 동네를 걸었던 시간보다 최근 이틀 걸었던 시간이 더 길 것이다. 그럴 수 있을 정도로 그 동네가 가까움이, 지금 내가 찾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점인건가, 싶을 정도로.




월세는 점점 오를 것이었고, 그래서 점점 힘들어 질 것이었고, 지금도 충분히 소홀히 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준비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면, 그런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금의 전세집으로 이사하는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맞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의 선택이었다. 월세가 더 오른 집에서, 살려면 살 수 있었으니까.


이제는 정말 내가 나아지고 내가 스스로 합리화할만한 이유가 필요해졌다. 가능성의 영역이던 고양이는 이제 나에게 반드시 데려와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이 집에 있는 이유가 필요했다. 이전의 집, 이전의 동네를 떠난 괜찮은 이유가 필요했고, 그곳을 떠나서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했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이미 100중에 80 정도가 채워져 있었지만, 위의 이유로 이사를 한 첫 주말에, 그러니까 오늘,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했다.


이사 전에도 이미 충분히, 내가 데려올 고양이가 나 때문에 불행할까봐 불안해 했다. 건강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더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아이인데 내가 잘 돌봐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십 수년을 혼자 살던 나의 습관으로 인해 서로가 불편해지면 어떡하지, 이제 얘는 대부분의 시간 나라는 생명체와만 교감하고 살텐데, 내가 걔 맘에 들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설렘이라는 감정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질 지경이었다.


이사를 하면서, 나에게 그 고양이가 절실해지면서, 그 불안은 더 극에 달하고 있다. 이제는 심지어 내가 걔한테 대놓고 집착하게 될 것 같은 지경이니까. 데려오면 물론 좋은 점도 있고 행복한 부분도 있겠지만 얼굴 찌푸려지거나 싫은 부분도 있을 수 밖에 없을텐데, 그것이 나를 나쁜 애묘인으로 만들까봐 겁이 난다. 내 맘에 도통 들지 않는 이 공간이 그 아이의 마음에도 들지 않을까봐 불안하다. 내가 걔한테 집착하게 되어, 걔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정말 아무 것도 못하는 바보가 되어 굳어버릴 것만 같다. 오늘 새벽에 울린 그 빌어먹을 사이렌이 또 울려서 걔의 심장이나 청력에 무슨 문제라도 일으킬까봐 미칠 것 같다. 




가끔, 세어 보진 않았지만 세 달에 두 번 꼴로 로또를 산다. 2년 즈음 전이었던가,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 때 샀던 로또가 가장 절박했고, 되지도 않는 부푼 기대를 품었었고, 낙첨이라는 당연한 결과가 나왔을 때 그리도 좌절했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주 초에 로또를 샀었고, 그 때 다음으로 큰 기대를 품게 된다. 당첨되자, 당첨 되어서 이 집보다는 우리 둘을 행복하게 만들 집으로 당장 떠나버리자. 


아마 안 될 것이다. 그저 지금 나의 우울함이 급변한 환경에서 파생된 불가피하고 지나갈 수 밖에 없는 과정임을, 나의 불안함이 앞으로는 점점 나아질 것들에 대한 기우이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오늘 이 집에 올 고양이가 행복하길, 그리고 감히, 그 행복이 날 지금보다는 행복하게 만들어 주길. 이토록 이기적인 집사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미안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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