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뀐 지 문득
지금으로부터 1년 10개월 전, 고양이를 데려오기 전 날의 글이 내가 이곳에 남긴 마지막이었다. 새 집으로 이사 왔다는, 그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그런 집에 고양이를 데려와야 한다는 것이 불안하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2년 조금 안 되는 시간이 흘러 지금은 당연하게도 그토록 맘에 들지 않던 집에 꽤 적응을 했다. 집의 넓이도, 이따금씩 고장 나는 주차타워도, 풍경이랄 것이 딱히 없는 동네도, 이제는 날 불안하거나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 종종 오작동하던 화재경보 사이렌은 여전히 가끔 문제를 일으키지만, 복도에서 나는 소리만으로 이미 경보가 울렸음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는 입주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더 이상 집 안 스피커로는 울리지 않는다.
그 글에서 내가 절규하던 내용들을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너무나 사소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이전에 조금씩은 다 경험해본 일들이었다. 이사 스트레스야 그 정도가 이혼에 버금간다는 정신과 조사도 있다고 했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옷장이 들어가면 빈 공간이 없어지던 집에도 살아 봤다. 여러 강력 사건이 일어났다는 흉흉한 소문의 골목에도 살아봤고, 잘못 울리는 화재경보도 낯설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마치 세상이 무너지려는 듯했던 나의 마지막 글이 너무나 부끄럽고 당장이라도 지우고 싶지만, 당당한 일들만 세상에 남겨 놓는다면 나의 무언가가 세상에 과연 존재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냥 남겨두기로 했다. 정말 첫 경험이었던 것은 단 하나였다. 고양이. 2021년 3월의 첫 토요일에 데려온 아이.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해가 바뀌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쓴 적이 별로 없었다. 고마운 이가 챙겨줄 때 행복함을 느끼긴 하지만 내 생일에도 별 의미를 두지 않아 왔다. 해의 첫날, 1월 1일이라는 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준비하고 진심으로 기념하게 된 지 2년이 지났다. 삶의 피로도를 줄이고 싶어 평생에 걸쳐 열심히 줄여왔던 감정의 증폭이 다시 널을 뛰기 시작한 지도 2년이 지났다. 페이(Faye)의 생일이 2021년 1월 1일이라 했다.
페이는 꽤나 의존적인 고양이이다. 두 시간 이상 집을 비웠다 들어오면 꼭 마중을 나온다. 집을 비웠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응석을 부린다. 종일 집에 있는 날이면, 나와 같은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벽 너머에 있는 시간보다 분명히 길다. 잠이 들려다 간질간질한 느낌에 눈을 떠보면 어느덧 침대에 올라와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자려한다.
좋으면서 벅차고, 행복하면서 두려운 시간들이다. 그래도 당연히 나름의 적응은 있어서 이제는 더 이상 눈망울 위에 낀 맑은 눈곱을 보고 각막이 찢어진 줄 안다거나 병원 다녀오곤 피곤해 자는 것을 쓰러진 줄 알고 놀라서 다시 병원에 데려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하루하루의 큰 부분이 외줄타기임에는 변함이 없다. 여전히 하루하루의 식사량이 늘고 주는 것에 일희일비하거나 더 나아가 두려워하고, 넓지 않은 집이 터질 지경임에도 무언가를 자꾸 사댄다. 아픈데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있을 까봐, 나의 무언가가 저를 불행하게 하는데 말하지 못하고 있을까 봐, 내가 없는 시간이 혹시나 그저 두려움을 견디는 시간일까 봐,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걱정은 언제나 분명히 있다.
걱정에 메인 스스로를 힘들어하면서, 가끔씩은 불쌍해하거나 한심해하기도 하면서, 단지 나의 성격이나 기질 이외에도 나를 더 걱정하게 하는 것들을 굳이 되짚어볼 때가 있다. 보호자가 처음이어서임도 당연할 것이고 혼자 살면서 동물을 키우는 것이 안 해본 이의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일인 것도 분명히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표준보다 조금 더 살이 쪄서 겨우 4.6kg인 저 작은 아이가 다른 고양이들보다는 조금은 아픈 아이라는 사실 혹은 생각 때문일 것이다.
동물을 키워본 경험도 없고 회사에 출퇴근하면서 혼자 사는 남자에게는 입양이 까다로웠던지라, - 물론 더 노력하면 언젠가는 되었을 테지만 - 인터넷 카페를 통해 가정분양으로 데려온 페이는 유전병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종이다. 처음 동물병원에 간 날 유전자 검사를 하고 싶다고 했고, 수의사는 내심 유전병 소견이 발견될 경우 파양을 목적으로 하려는 것인지 의심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고, 그리고 실제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을 뿐이었다. 그때의 유전병 검사 결과는 반반의 확률이라 했지만, 두 돌이 채 되기 전인 올 가을 페이는 첫 증세를 보였다.
투약에 저항이 심한 아이를 겨우겨우 약을 먹이고, 유튜브에서 한 수의사가 '샤머니즘의 영역'이라 칭한 온갖 영양제를 구입하고, 한국에선 좀처럼 팔지 않는다는 치료기구를 직구하고자 갖은 노력을 하기도 했다. 직구를 그냥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미국 수의사의 소견과 인증, 연락처가 필요하다고 해서 온갖 SNS에서 미국 수의사들을 찾아 DM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한국 수입처를 찾았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나름 고가의 기구를 샀지만, 약과 영양제를 먹고 활동성을 찾은 페이는 기구만 보면 도망가곤 한다. 멀쩡한 모습으로 도망가는 모습에 웃음이 나고 마음이 나아지는 때가 좋아 괜히 기구를 들이밀 때도 있다. 그렇게 외줄타기에서 가끔 묘기 부리며 즐기기도 하는 여유가 조금은 생겼다.
고양이를 데려온 초반의 나를 보고 한 선배는 내게 고양이에게 인생을 저당 잡혀 살고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는 아마 지금의 나를 보면서도 여전히 그렇다 할지 모른다. 별 가구나 소품 없이 살아왔던 나의 공간이 온갖 고양이 용품들로 발 디딜 곳이 없어져 있고, 정작 고양이는 존재 자체도 신경 쓰지 않을 홈캠을 미친 듯 들여다보는 시간도 여전히 잦다. 출근을 포함한 긴 외출은 언제나 신경 쓰이고, 아주 작은 행동 변화에도 덜컥 마음이 내려앉을 때가 있다. 반려대상이 있는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정도에 있어 내가 조금 유별나긴 한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분명 있다.
그래도 페이가 태어난 지 만 2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에 들어, 이제야 조금은 이 아이가 주는 행복감을 온전히 누리기 시작한 느낌이다. 긴 외출을 마치고 돌아올 때 달려 나와 다리에 비비적대는 모습은 여전히 짠하고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벅참과 기쁨, 반가움을 더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하고 놀이에 반응하지 않는 날에도 여전히 혹시 어디가 불편한 건 아닌지 걱정이지만, 그러면서도 그저 옆에 누워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같이 늘어져있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초인종을 누르지 말라는 주문에도 누군가 어김없이 눌러버린 초인종에 자다 깨서 호다닥 숨어버리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초인종을 누른 이에게 화가 나지만, 저 쫄보 기질은 어디서 나온 건지 웃으며 놀릴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페이가 지금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이라는 것이 그에게 만약 너무 고차원의 영역이라면, 결핍이나 고통을 느끼는 때가 최대한 적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수많은 2년을 그렇게 함께 보내면 좋겠다. 나의 세상이 바뀐 지, 어느새 얼추 2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