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전용 수영장 분투기
수영을 배운 지는 꽤 됐다.
하지만 띄엄띄엄 배우다 쉬기를 반복하면서 오랫동안 중급반을 벗어나지 못했다.
삶이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니까. 직업 특성상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기도 했고, 코로나가 찾아오면서 수영장을 다닐 수 없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아이를 낳았다. 그 순간부터 내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수영은커녕 씻는 시간조차 허둥지둥 쪼개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면서 비로소 내게도 ‘내 시간’이 생겼다. 오랜만에 다시 물속에 몸을 담갔을 때, 나는 수영이 이렇게나 좋았던가 싶었다. 푸른 물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그 감각,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나아가는 그 순간이 주는 해방감.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매일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중급반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이제 교정반으로 가셔도 되겠어요."
그 말이 어찌나 기쁘던지. 나는 길이는 20m 남짓, 일어서면 엉덩이까지 오는 얕은 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은 깊은 물을 바라보며 ‘언젠간 나도 저곳에서 헤엄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가능하다고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작은 연못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사실 수영 실력은 어느 정도 늘었지만, 교정반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인정받았다’는 의미였다. 내 노력이 누군가에게 보였고, 그만큼의 실력이 된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느낌. 나는 이제 더 깊은 곳에서, 더 넓은 물에서, 더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수영장의 반이 바뀌는 일이 아니라, 내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이었다.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내 시간은 언제나 뒷전이었고, 나는 나보다 아이를 먼저 챙기며 스스로를 희생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다시 나 자신을 돌보고 있고, 무언가를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다른 사람이 알아봐 주었다.
깊은 물로 나아가는 건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설렌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까? 더 깊은 곳에서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이제 더 이상 얕은 물에 머물지 않을 거라는 것.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고, 언젠가 이보다 더 깊은 물에서도 자연스럽게 몸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물속으로 뛰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