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가 나를 살게 했다.
챌린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시기는 군생활 11년 차.
11년의 군생활을 하면서 10년 이상의 직장생활을 하면 겪는 정체기가 찾아왔다.
더구나 육아휴직 복직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표현할까?
중대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냥 중대장이 아니었다.
대형 유류탱크가 10기나 있는 유류중대장이었다.
유류탱크가 있는 부대다 보니 우리 중대만 울타리가 따로 있는 주둔지였다.
대대 본부와는 1시간이 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고
대대본부와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은 중대장의 부담보다 더 큰 부담이었다.
부대 특성상 기름유출사고 방지, 주유 시 화재사고 방지등 관리할 것이 많았다.
당시에 막사 및 부대 주변 리모델링까지 추가 임무도 있었다.
하나 더 말하자면 코로나까지!
(와.. 나 이렇게 쓰고 나니 중대장 정말 힘든 시기에 했구나?)
버거웠던 중대장 시절이었다.
보직 변경이 되고 나면 보통 1개월을 적응 기간을 본다.
하지만 나는 오랜 휴직(1년 8개월)을 했기 때문에
적응기간이 더 걸렸다.
3개월쯤 허덕였다.
그리고 내 성격상 스스로의 목표치가 높은 편이다.
이왕 하는 거 최고가 되자라는 마인드를 달고 산다.
워킹맘으로의 첫 보직인 데다
내가 보직된 유류중대에 첫 여성 중대장이었다.
보직 인원이 여성이라 보직심의 간 고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안전하게 부대운영을 하면서 여자 중대장도
문제없이 유류중대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잘하고 있다. 너 잘하고 있어. 칭찬받고 싶었다.
채찍질보다는 당근이 더 효과적인 나였다.
스스로 당근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당근을 찾아 나서는 길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챌린지가 바로 그것이다.
챌린지마다 정해진 규칙은 달랐다.
하지만 매일 인증을 해야 하는 것은 동일했다.
챌린지를 통해서 사람들은 루틴을 얻고 싶어 하니까.
나 역시 매일 무언가를 해서 루틴을 만드는 것을 원했다.
정체기를 루틴으로 극복하고 싶었다.
중대장도 잘 해내고 싶던 군인, 육아도 잘하고 싶었던 엄마는
스스로를 챌린지라는 틀 속으로 들어갔다.
정체기는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졌다.
군인인가? 그러기엔 부대에 올인하는 느낌은 없다.
엄마인가?라고 하기엔 하루에 아이를 보는 시간은 4~6시간 남짓이었다.
그럼 나는 뭔가? 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증명하고자 했다.
일기를 쓰면 되는 거 아냐? 할 수 있지만 일기만으론 부족했다.
인증을 하고 기간 동안 챌린지를 완주했을 때
어플에서 완주했다는 그 이미지 하나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매일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었기에 나는 매일을 증명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매일 증명을 하다 보니 스스로에게 당근을 주는 겪이 되었다.
중대운영과 육아도 자연스럽게 잘 해냈다.
결국 다 내 정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챌린지를 통해 알 게되었다.
나를 증명하는 것이 곧 나의 인생을 잘 굴러가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