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적었나
기록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쓰면 좋지! 하지만 귀찮아.
밀리면 스트레스야.. 하며 쓰다 말다를 반복하는 그것.
그것이 기록이었던 거 같아요.
스마트폰 메모장을 활용하는 사람도 있고
다이어리에 끄적끄적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는 디지털 기록보다는 아날로그 기록을 좋아해요.
초등학교 때부터 6공 다이어리 꾸미기도 좋아했고요
(교회도 안 다니는 데 주기도문 적기, ABO궁합 등등 이거 적어본 분 댓글 좀 어떤 거 적으셨는 기 추억 소환해 봅시다)
중학교 때는 러브장, 교환일기 쓰기도 좋아했고요.
고등학교 때는 귀욤뽀짝 하게 학습플래너를 쓰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대학교 이후로는 기록이 잠시 멈췄더라고요.
다이어리를 사서 간헐적으로 일기를 쓰긴 했지만
뭐랄까? 버리기도 뭐 하고 안 버리기도 뭐 한 정도로 일기를 쓴 다이어리들이
창고 안 기록 판도라 상자에 들어있어요.
그때 알았어요 나는 기록을 어쨌든 하고자 하는 사람이었구나.
정신없이 살다가 군입대를 하고 후보생 시절에 수양록이라는 걸 받았어요.
그때도 전 군생활 시작의 기록을 빼곡하게 적었어요.
하지만 후보생이 시절을 지나 소위로 임관을 하고 교육을 받으면서부터는 기록이 많이 없더라고요.
무언가에 잘 적응을 하면 그때부터는 기록을 하지 않다는 걸 또 깨닫습니다.
교육기관에는 동기들끼리 생활하니까 마음이 편했었죠.
공부성적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록은 뒷전이 됐고요.
그러다 소대장으로 임무수행할 때 사람이 힘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일기를 썼더라고요.
이제 와서 보니까 힘든 시기에만 기록을 해왔던 저를 발견했어요.
대부분 그렇게 기록을 시작하더라고요.
시작이라는 특별함을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을 하거나,
힘든 나를 보듬어 주기 위해서 하거나,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는 애매한 이야기를 마음속에 계속 가지고 있기는 싫어서
종이 위에 끄집어냈던 거예요.
시작, 힘듦, 애매한 이야기 등을 적으며 시작한 기록은 그때뿐이 더라고요.
마음 치유 정도는 됐어요. 하지만 제가 크게 변화하진 않았죠.
우울증 환자들에게 정신과 의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현재 환자분의 상태를 적어보세요.'라고 한대요.
객관적으로 자신과 마주하는 거죠.
과거의 기록을 했던 저는 그저 우울증이 걸리지는 않을 정도의 기록을 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하게 기록을 하니까 제가 바뀌는 순간을 맞이했어요.
중대장이 되면서 시작을 잘 기억하고 싶었어요.
위에서 말한 3가지 기록을 하게 되는 불씨인 '시작'이었던 거죠.
많지도 않았어요 하루 3~5줄 정도 적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감사일기 쓰기 챌린지도 하면서 말이죠.
그러다 챌린지를 접하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죠.
특히 미라클모닝을 하면서는 기상시간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나 6:02에 일어났다! 아주 열심히 사는 걸?' 하는 느낌으로 당시에는 기록을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그 기록을 보니까 드는 생각이 뭔지 아세요?
네가 이렇게 꾸준히 기록하고 소소한 것까지 기록을 해둔 덕분에
내가 이렇게 성장했어라고 과거의 저에게 칭찬을 퍼붓고 싶어요.
기록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록 커뮤니티 활동을 하게 됐고요.
기록커뮤니티에서 얻게 되는 정보(특히 문구 ㅎㅎㅎ, 문구덕후까지 돼버렸습니다.)에
휘둥그레 해지면서 점점 텅청이 되어가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ㅎㅎ
그렇지만 기록의 종류, 기록을 재밌게 하는 방법, 그리고 그 속에 만난 기록하는 사람들과의 유대가 형성되면서
군이라는 틀 안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회의 사람의 이야기, 활동을 보니 제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엄청나게 확장되더라고요.
이렇게 많은 전시가 있구나, 이렇게 많은 문구 브랜드가 있구나,
이렇게 많은 책이 있구나, 어? 필사는 뭐지? 책을 베껴 쓴다고?
하루하루가 다양하고 신기한 일들로 가득했습니다.
기록을 좋아하면서부터 크게 바뀐 변화가 뭐냐면요.
기록을 좋아했을 뿐인데 같은 취미를 가진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어요. 저는 좋아하는 것을 딥하게 사랑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요.
그 이후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노트에 펜으로 적는 행위가 좋으니까 저절로 책상을 향해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저녁에 책상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쓰고 싶잖아요?
어린아이를 키우는 육아맘은 아주 힘든 일이었어요.
아이가 있을 때 기록을 하려니... 온전히 저를 만날 수 없었고요.
이건 나를 만나는 건지 아이를 만나는 건지 글을 쓰는 건지 마는 건지.
일기 쓰는 동안 남편이 아이를 보는데 '언제 끝나?' 하며 물어보기도 하고
아이는 '엄마~ 엄마~' 하며 저만 찾기도 하고요.
종이 위에 나의 하루 몇 줄 적는 것도 엄마가 되고 나니 참 힘들더군요.
새벽기상을 해야지만 나를 만나는 기록이 가능했습니다.
온전히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아침잠이 많아 나는 종달새가 아니라 올빼미야! 하며 살던 제가
새벽 4~6시 사이에 일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요.
그 노력이 벌써 만 4년이 다 돼 가네요. 이제는 종달새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새벽에 일어나서 기록을 할 겁니다.
새벽시간이 주는 힘을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남들이 자고 있는 그 시간에 그 좋은 기운 제가 많이 받아야겠습니다.ㅎㅎ 많이 들 주무세요 ㅎㅎ)
에이 너무 억지 아니야?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근데 사실인걸요?
꾸준히 일기를 썼고 일기를 쓰다 보니 저를 더 들여다보게 된 것이죠.
나를 들여다보니 변화가 필요해 보였고 변화를 위해서 챌린지를 했습니다.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기도 했고요.
챌린지의 틀에 들어가는 움직임.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한 움직임. 맞잖아요?ㅎㅎ
작년 12월에는 제가 쓴 제주 한 달, 제주보름 기록물이 전시되기도 했었어요.
올해 4월에는 기록 모임에서 연사로 저의 기록생활을 15분 동안 강연하기도 했고요.
이런 활동이 기록이 없었다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일이었을까? 싶어요
지금까지 있던 일을 생각해 보면 기록 때문인가?!라는 질문에 yes!
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답니다.
챌린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유독 기록을 많이 해요.
인증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성취한 일들을 해빗트레커에 많이 표시하고 색칠한 칸이 모두 채워졌을 때의
밀려오는 뿌듯함은 직장, 가정에서 주는 칭찬과는 차원이 다르죠.
일주일, 한 달간의 나의 성과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던 것이 바로 기록이니까요.
기록은 그렇게 저를 움직였고 앞으로도 계속 움직이게 만들 거라는 걸 저는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