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만에 구조선이 나타났다.

작심 3일이 이래서 나온 말인가.

by 다씽

제주 살이를 한다고 동네방네 다 떠들어댔다. 제주 한달살이를 한다는 소식에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우와 좋겠다. 가족 다 같이 가는 거예요?"

"아니요"

"그럼 엄마랑 애들만 가는 거예요? 힘들겠다."

"네, 그런데 친구랑 친구 애기도 같이 가요"

"오 신기한 조합이네요. 그럼 아빠들이 휴가 아니에요?"

결국 아빠의 휴가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말하는 사람마다 그랬다.


제주도에 아내와 아이들을 보내놓은 두 아빠들은 직장생활과 약간의 자유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에 한 달이나 숙소가 생겼는데 한번 이상은 와봐야 되지 않을까? 했다.


그 첫 번째 주자는 유라의 가족이었다. 유라 친정부모님과 유라 남편이 왔다. 마침 여름에 온 제주라 여름휴가와 병행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주 적정한 시기에 찾아와 주었다.


제주 표류 '3일만'에..


모두가 무언가를 할 때 작심 3일이라는 표현 한다. 제주에 표류한 지 3일 만에 구조선이 나타난 것이다. 첫날은 비행, 짐에 치여 힘들었고, 둘째 날은 폭우, 효린이의 감기로 육아가 버거웠고, 유라에게 미안함이 가득했었다. 셋째 날이 되었을 때 나타난 유라 가족은 나에게는 너무 감사한 존재였다.


각자의 가족이 제주에 방문했을 때 우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첫째, 각자의 가족과 함께 다닌다. 예를 들어 유라의 가족이 왔다면 유라가족이 함께 이동하는 차량을 렌트한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숙소에 있거나 아이들과 이동하는 루트를 마련한다. 둘째, 우리 가족이 온다면 렌터카를 대여할 때 유라도 공동 운행자로 등록하고 렌터카를 유라가 운행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기름값은 각자 지불한다. 렌터카는 빌린 사람이 지불하는 방식이다. 넷째, 차종은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차종으로 선택한다. 경차는 아이가 있기에 안전상 제외시켰고 준중형 급의 차량으로 렌트를 했다.


유라 가족이 점심시간쯤 도착한다고 했다. 공항으로 마중 겸 유라와 서아를 가족에게 인계(?) 하기 위해 서둘러 이동했다. 제주 표류 3일 만에 보는 맑은 하늘이었다. 이동하는 길에 해안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와~ 바다다. 그지 이게 제주바다지!' 하며 천천히 달렸다. 제주 해안도로는 뒤에 차가 오는지 확인하며 속도를 줄여서 다녔다. 나만 제주 여행자가 아닐 것이고, 빨리 지나가야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잘 살피면서 다니시길. 해안도로에서 유독 천천히 달리는 차들을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여행자가 많은 곳이기에 당연(?)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제주바다는 마을마다 예쁘게 칠해 놓은 해안가 경계석을 만날 때가 많다. 우리도 어김없이 만났다. 파스텔톤의 무지갯빛이 가득한 경계석이었다.

"엄마 우리 여기 내렸다가 가면 안돼?"

효린이가 이야기한다. 유라도 동의한다. '그래 내리자.'

주차를 하고 내려서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첫! 사진을 남겼다. 바다에 들어갈 계획이 없이 왔기에 경계석에 걸터앉거나 서서 사진을 찍었다. 정차한 곳 맞은편에 햄버거 집이 있다. 유라가 보더니 "어? 여기 무거버거잖아! 여기 유명해" 하는 거다.


유라는 맛집, 카페 등 예쁜 곳 서치를 잘했다. 제주 핫플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제주도 여행을 갈 때면 유라에게 종종 맛집 추천을 받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실력이 이렇게 드러났다. 역시 사람은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여야 제 맛이다.

내가 "우리 햄버거 먹고 갈까?" 했다.

그렇게 무계획, 파워 행동러 들은 무거버거로 발길을 옮겼다.


어른 둘에 아이 셋, 그리고 아이 셋 중 둘은 유아식을 막 시작한 아이들이었다. 햄버거를 인당 수에 맞춰서 시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자리는 5자리가 필요했다. 다행(?)이라 할 수 있던 건 사람이 많이 없었다. 1층에 우리 밖에 없었으니... 그나마 덜 눈치가 보였다. 햄버거 2개, 감자튀김을 시켰다. 제주도의 특색을 담은 수제 버거였다. 빨리 맛 만 보고 나가자! 했다. 엄마 둘이 아이 셋을 데리고 제주도의 핫플을 다닌 다는 것이 실감이 됐다.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그냥 내가 그랬다. 브런치 느낌으로 수제 햄버거를 먹고 유라 가족이 기다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 중인 유라 부모님과 남편을 만났다. 2n연차 친구기에 구면이었지만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감회가 남달랐다. 한 달짜리 가족의 찐 가족을 만나니 괜히 더 조심스러웠다. 간단한 식사를 하고 왔다고 했지만 부모님 밥 사주시겠다고 식사하라고 권유하셨다. 부모님의 사랑은 언제나 환영이다.


가족에게 유라를 인계하고 나와 효린, 호진은 병원으로 향했다. 어제 처방받은 약의 효과는 있었지만 소아과 전문 병원이 아니었기에 시내에 나온 김에 소아과 방문을 했다. 바로 소아과에 갈 수 있었던 건 제주 표류되기 전 만약을 대비해서 소아과, 응급실, 각종 아이와 함께 가면 좋을 곳, 맛집, 카페 등을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유라 가족을 만나러 온다고 지도 검색을 하다 체크해 뒀던 병원이 5분 거리에 있다는 걸 발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무계획러지만 사전 정보를 축적한 내가 뿌듯해진 순간이었다.


소아과 진료도 급성 편도염으로 판정을 받았고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냉장보관 항생제였다. 어떡하지 하며 머리를 굴렸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실온상태로 집에 빨리 도착을 했을 텐데 병원 이후에 숙소 이동시간만 1시간이 소요됐다. 대책이 필요했다. 내가 여기서 또 잘한 일! 이 하나 있는데 바로 텀블러를 챙긴 것이다. 제주도는 쓰레기 관련해서 예민하다 보니 텀블러는 챙겨야 한다는 걸 실행했던 거다. 차에 항상 텀블러를 챙기자! 했고 시내 쪽으로 넘어오는 길에 스타벅스에서 아이스아메리카로를 마셨고 얼음이 담긴 채로 차에 있던 텀블러가 생각났다. 항생제를 텀블러에 쏙 집어넣었다. 오늘 만 두 번째로 뿌듯해진 순간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이 아닌 타지에서 생활하는 것에서 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그때마다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는 걸 제주도 살면서 더 많이 실현시켰다. 오늘만 해도 두 건이나 행동했다. 엄마의 판단이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병원 진료, 항생제 보관등 뭐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하나 싶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동선 하나, 컨디션 하나가 크게 일정을 크게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신경을 썼고 아이들도 동선, 컨디션 크게 무너지지 않고 함께 해줬다. 컨디션이 괜찮아 보여서 한 곳만 더 들렀다가자했다. 바로 해군 PX GS25N제주탐라점이다. 지도에 체크해 뒀었는데 10분 거리라 들렀다 가보기로 했다. 육지에 있는 군국복지마트를 생각했지만 GS25... 편의점에 약간의 군 할인 상품이 있는 곳이었다. 군인이라 누릴 수 있는 큰 혜택을 제주도에서도 누려보고자 방문했지만 크게 가격의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가까운 곳이라면 자주 방문 했겠지만 1시간씩 시간을 내서 방문하기엔 여러 상황 고려 재방문은 안 하는 걸로 했다.


집으로 출발! 가는 중에 유라에게 전화가 온다. 뭐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본다. 부모님이랑 장 보러 왔는데 무엇을 사갈지, 바비큐를 해 먹으려 하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그럼 바비큐 하는 것으로 구입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도 고기도 잘 먹고 나도 특별히 가리는 건 없다 했다. 방문해 주시는 것도 감사했는데 장까지 봐주시니 천사가 따로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지 우리보다 조금 빨리 도착하셔서 숙소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계셨고 유라 남편은 열심히 마당의 바비큐 화로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마당 있는 숙소의 활약을 제대로 하는 날이었다. 바리바리 싸갔던 짐 중에 해변, 마당에서 놀 때 쓰려고 준비한 6인용 짜리 돗자리도 깔았다. 숙소가 좋았던 건 마당에 감성 알전구를 둘러놓으셨다. 탁, 전등 스위치를 켜니 아이들, 부모님 모두 환호했다. 감성 카페라고 하는 곳에는 다 있는 그 알전구가 괜히 기분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고 숙소가 더욱 마음에 드는 효과까지 들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내내 유라 부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셨다. 육아하는 분들은 다 알 거다. 아이가 잠깐이라도 타인의 보육을 받는 다면 숨이 틔인다는 것 말이다. 내가 씻을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생긴다. 하다못해 마음 편하게 볼일 볼 시간도 생긴다. 그래서 3일 차에 방문한 구원투수들이 제주 살이의 점수를 3점은 높여주었다.


낯선 환경에서 24시간 아이들과 함께하고 친한 지인이지만 길어야 일주일의 여행을 했던 사이와 각자의 자녀를 데리고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기에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심신이 더욱 빨리 피로했다. 그 와중에 방문해 주신 유라부모님과 남편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유라와 함께 준비한 숙소에 무료로 지내게 됨을 감사, 미안해하시며 식사를 준비해주시고 하니 경비도 절약이 되기도 하고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되었다. 고작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제주가 익숙해지기커녕 버거운 존재로 다가왔었다. 정말 표류된 느낌이 강했다. 그런 우리에게 구조선을 타고 각종 식량과 지친 심신을 고쳐주러 방문한 구조대 유라가족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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