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효린 병원행 그리고 맥주를 맛있게 먹는 법
낯 선 곳에서의 첫날밤이 지났다. 어제의 내 기도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창 밖이 어둡다. 그리고 토독토도독 소리가 들린다. 커튼을 열었는데 바닥이 촉촉하고 저 멀리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본격 첫날인데 맑은 날을 선물로 주시면 좋으련만...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계단을 내려간다.. 아 진짜 적응이 안 된다. 올라갈 때 보다 내려갈 때가 더 가파르고 위험하다. 효린이에게 내려올 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호진이는 내가 안고 내려가야 하는데 호진이가 발버둥 치지 않기만을 바랄 정도로 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역시 살아보니 하나하나 불편한 점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1층 유라가 있는 방에 들어가 보니..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방이 더 크긴 했다) 넓게 트인 통창으로 비가 내리는 풍경이 예술이었다.
같은 집 맞아? 할 정도 또 후회가 밀려온다. 2층에서 지낸다고 먼저 말하지 말걸...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먼저 2층에서 지내겠다 했고 효린이가 좋아하니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장을 봐야 했다. 그런데 톡톡톡 내리던 비는 후두두두둑으로 바뀌었다. 유라와 상의를 시작했다.
"내가 혼자 얼른 마트 다녀올까"
"그런데 효린이는 괜찮은데 호진이 울면?"
"아.. 그러네 안 되겠다. 다 같이 가자"
비가 잠시 소강상태가 됐을 때 모두 탑승시켰다.
출발하려는데 이제는 효린이가 울먹인다.
"엄마 나 배 아파"
"화장실 가고 싶은 거야?"
"아니, 그냥 배가 아파"
"그럼 마트 갔다가 병원 가보자" 했다.
유라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기만을 바랬는데... 효린이를 만져보니 약간의 미열도 있다. 첫날부터 아프다니 그것도 내 아이가 아프니 무계획 일정이지만 불필요한 동선에 여행에 차질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오늘은 비가 와서 장보기 이외에 큰 일정은 없었다.
우선은 하나로 마트에 도착했다. 제주도는 하나로마트가 발달돼 있어서 숙소 주변 가까운 곳으로 미리 체크를 해두었다. 쌀, 김치, 계란, 파, 각종 조미료, 과일, 맥주 등 식량을 구입했다. 결제는 탐나는전(제주지역화폐)을 활용했다. 제휴된 곳에서 결제하면 일정 퍼센트가 적립이 돼서 경비를 아낄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 지역화폐 카드를 쓰지 정말 제주도민이 된 느낌이었다.
장 보는 내내 배가 아프다고 한 효린이가 마음에 걸렸기에 빨리 짐 싣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가장 가까운 소아과는 차로 30분 거리였다. 그런데 5분 거리에 의원이 있었다. 정겨운 시골의원. 그거 맞다. 도시에서 소아과만 다니던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배가 아프다고 한 녀석을 살피시더니 감기라고 하셨다. '엥? 배가 아픈데 감기라고요?' 속으로 생각하며 지금 육지에서 왔다고 대충 엉터리로 진료하시는 건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아과에 가면 다 있는 귀 코 입 속을 보는 내시경이 없었다. 내시경의 대체 장비로 불이 들어오는 귀 확대경을 사용하셨다. 그리고 의사가운 없이 너~~ 무 평상복으로 진료를 보셔서 '진짜 의사는 맞겠지?'나의 의심을 커져만 갔다. 하지만 입속을 보시더니 편도가 많이 부었다. 하시며 편도가 부으면 배고 아픈 경우가 있다고 하셨다. 편도염 약을 처방해 주셨고 에어컨 바람 많이 쐬지 말라하셨다. 아차. 어젯밤 우리의 머리 위에 벽걸이 에어컨이 있었다. 찬바람이 호흡기로 내리꽂은 것이다. 새벽에 살짝 춥다는 느낌은 들었는데 에어컨 온도 조정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우산은 하나뿐이었다. 효린이를 데리고 처방전을 받아 길 건너에 있는 약국으로 향했다. 어라? 문이 닫혀있네 안에는 불이 켜져 있는데...? 이상하다 하고 보니 점심시간이라고 문을 닫은 것이다. 아.. 유라와 서아, 호진이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를 어쩌지... 지체할 시간이 없다. 우선 근처 약국을 찾아야 했다. 걸어서 4분 거리에 약국이 하나 있다. 우선 가자 하고 가는데 비는 오지 효린이는 힘들다고 보채지 나는 빨리 다녀와야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효린이를 엎고 약국으로 달렸다. 내 한 손엔 처방전, 한 손엔 효린이 엉덩이에 가있다. 우산은 효린이가 들었다. 엄마는 슈퍼우머이다 하는 게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이겠지 싶은 순간이었다. 약국에서 처방을 받아 다시 차있는 곳으로 달렸다. 비도 비였거니와 기다리고 있는 유라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다. 어제, 오늘 왜 이렇게 미안한 일만 생기는 거야 진짜.. 하며 차로 돌아갔다. 낮잠을 자고 있던 호진, 서아 두 녀석은 깨어 있었고 특히 대박이는 내가 없으니 울고 있었다. 유라는 일어난 지 얼마 안 됐고 운지도 얼마 안 됐다고 했지만 그건 내가 확인하지 못했으니 언제부터 울었는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그저 미안.. 또 미안했다.
그 미안함을 만회(?) 하고자 집으로 빨리 이동했다. 비 오는데 파전에 막걸리 먹어야 되는 거 아냐? 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나 우리에겐 맥주, 김치뿐이었다. 그래 그냥 김치전에 맥주를 먹자!로 결정이 났고 내가 김치전을 맛있게 해 주겠노라! 이야기했다. 그런데 유라가 재밌는 이야기를 한다.
"너 맥주 맛있게 먹는 법 알아?"
"시원하게 먹는 거? 근데 너 술 잘 안 먹잖아"
"뭐 술은 안 먹어도 맛있게 먹는 법은 알고 있을 수 있잖아? 예전에 냉장고를 부탁해 에서 개그맨 김준현이 말한 건데 그냥 기억하고 있는 거야. 가끔 남편이랑 이렇게 먹거든. 진짜 더운 날 집으로 가는 길이라면 물, 음료 등 1도 먹지 않고 가야 해.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무것도 먹지 말고 샤워를 해야 해. 그리고 난 후에 맥주를 먹으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맥주래"
"오~ 설득 됐어, 납득 됐어! 오늘 바로 시도해 보자"
비가 오긴 했지만 효린이를 업고 달렸고 미안함에 진땀이 나서 내 목을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습관적으로 물을 찾는 나에게 유라가 '물 금지령'을 내렸다. 갈증을 간직한 채 김치전을 구웠다. 아... 정말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전을 참 잘 굽는단 말이지. 밖은 추적추적 비로 바뀌었고 거실에서 내리는 비를 보며 김치전과 맥주 500cc를 2개의 잔에 나눠 담았다.
"잠깐만 이거 사진 찍어놔야 해" 하며 유라는 예쁘게 세팅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정말 먹음직스러운 사진이 촬영되었고 그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우리는 게걸스럽게 해치웠다. 특히 맥주를. 둘 다 술을 마구 즐겨하는 편은 아니라 500cc를 딱 나눠서 잘 먹었다. 아~~ 주 기분 좋은 한잔이었다. 종일 미안함에 둘러싸여 있던 나는 미안함이고 뭐고 그냥 그 순간이 이게 비 오는 날의 제주지! 하며 제주를 온전하게 누리고 있었다.
이날 이후부터 우리는 맥주를 정말 맛있게 먹는 일들이 가득 한 제주를 마주했다. 나는 지금도 여름이 되면 유라가 알려준 김준현 맥주법으로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앞으로도 유라가 알려준 방법으로 맥주를 먹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