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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Feb 26. 2019

인턴이라는 야만

인턴이라는 야만 


오늘을 끝으로 3개월간 함께 했던 인턴 동료가 떠났다. 가엾게도 우리는 그녀를 마지막까지 떨게 했다. 3개월간 해야 할 과제를 처음부터 던져 주었고 마지막 발표하는 날 떨리는 목소리로 가냘프게 그리고 당차게 발표하는 모습은 애처로웠다. 발표 직전 괜찮다고 건넨 내 위로에 그녀는 자신의 심장 박동이 사람들에게 들릴까 걱정이라 말했다. 그리곤 발표 직후 하루를 더 근무하고 회사를 떠났다. 떠나기 직전까지 그녀는 감동을 선사했다. 팀원 모두에게, 밤을 새웠을지도 모를, 정성 어린 손 편지를 건넸다. 불과 3개월 남짓 기간에 구구절절한 추억이 있겠냐마는 소소한 일들로 각인된 그녀의 기억이 오롯이 편지 안에 녹아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지난 3개월을 기록으로 남겼다. 먼 나라에까지 와서 인턴이라는 어정쩡하고 불안한 신분으로 살아냈던 젊은 20대 초반의 여성. 약한 것들을 죄다 이어 붙인 개인에게 회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활용하고 개인은 가장 모진 방법으로 이용을 당한다. 마지막 발표가 끝나면 떠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긴장하며 최선을 다했던 모습이 어른거린다. 거기다 대고 회사는 이런저런 질문들과 요구들을 쏟아냈으니 매출확대를 위한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 발표가 끝난 직후 발표자료를 공유하자는 것이 그녀에게 건넨 우리의 마지막 요청이었다.   


그녀는 인턴으로 사회에 내딛는 첫 번째 걸음마를 땠다. 사무공간이라는 곳이 신기했고 주위 사람들이 부르는 직함도 새로웠고 따끈한 A4 용지가 줄줄이 나오는 프린터기의 버튼도 생소했다. 그 활기찬 새로움으로 무엇이든 알아내고 말리라는 당찬 질문들을 쏟아 냈다. 모두가 친절하게 설명했으나 대답 끝에는 늘 그녀의 맑은 눈을 끝까지 응시할 수 없었다. 유곽의 늙은 포주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시는 이 바닥에 발 들여 놓지 마라.  

정신적 늙은이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청춘에게 회초리를 휘두르고는 아파야 한다고 말한다. 개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늙은 자들이 청춘을 부러워하는 유치한 방식이다. 그녀는 청춘을 억압하고 말리라는 노회한 자들의 용심을 꿋꿋하게 버텨냈다. 그리고는 버려졌다. 저는 괜찮아요, 해외에서 업무 경험했잖아요, 그걸로 만족해요. 다시는 월급쟁이 바닥에 발 들여 놓지 마시라. 아마 평생 그대가 말한 만족이라는 거 모르고 살지도 모른다. 차마 말하지 못했다.   


사람을 간 보며 불과 3개월 만에 퇴직을 명령하는 한시적 인턴제도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 청년들을 요리조리 농락하는 범죄에 가깝다. 효율이라는 논리에 사람을 이,삼 년마다 대청소하는 것이다. 웹사이트 구직 포털에는 오늘도 인턴 구인이 도배를 한다. 인턴 구인은 규모가 크고 시장 지배력이 큰 대기업이 앞장 서서 모집한다. 그마저도 잡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다. 야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약한 자의 간절함을 효율과 저원가로 악용하며 짧은 기간 취하고 뱉어내는 모습이 잔인하다. 이 광경이 반복되면 결국 사회는 야만의 공기가 뒤 덮을 테다. 회사도 사람도 염치를 알아야 비로소 온전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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