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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Dec 14. 2021

돈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했겠는가?

돈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했겠는가?


"몽구스가 제 목을 물어뜯으려는 늑대에게 막무가내로 저항하면 늑대는 기가 차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가 사라져 간다. 인간과 자연의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인문학이 자신의 죽음을 지연시키고 천적을 성가시게 하기 위해 자체 생산하는 독성은 무용성일 것이다.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 p. 156)


무용함은 쓸모의 세상에 쓸모없음을 가치로 만들어버리는 무기다. 무용함은 하늘을 빙빙 도는 가공할 폭격기를 지대공 기관총 따위로 위협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인문학의 유일한 무기다.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이기는 편에 살짝 발을 얹으려는 사람들 속에서 주식투자 하지 않고, 출근하지 않고, 퇴근시간 칼같이 지켜가며 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길 수 없다는 절망은 이기려는 무모함을 애초에 막을 수는 있다. 더는 모으려 하지 않고, 시키는 일에 목숨 걸지 않고, 꼬박꼬박 칼퇴해가며 세상으로부터의 훼손을 막아내는 것, 이제야 비로소 자기파괴에서 자기수성으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경쟁과 쓸모가 제1원리가 된 이 사회에서 경쟁과 쓸모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선택권이 없어진 개인은 오로지 자신에 대한 자기처분권 밖에 남지 않는다. 자살율과 출산율은 그렇게 밀려난 사람들을 사회가 얼마나 안아주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척도다. 단지 깨침의 속도가 느린 자, 국.영.수가 아닌 다른 곳에 재능 있는 아이들을 더는 안아 주지 않겠다는 사회적 의지만 확인할 뿐이다. 밀려난 자들은 다신 올라오지 못하게 밟아 대는 잔인한 사회로 가장 빠르게 진입한 사회가 되었다.


자본은 끊이지 않고 이어갈 것이다. 끊임없이 공급되는 노동력을 전제로 생존할 수 있지만, 인구절벽의 시대가 도래해도 자본은 끝내 살아남을 것이다. 노동이 우위에 서는 날은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월급의 대부분을 노동하기 위한 필요로서의 소비, 노동력 유지를 위해 쓰여질 때 소비해야 살아가고, 살기 위해 소비해야 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일하는 자는 자본 위에 올라설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죽어야 끝날 거라는 절망의 사고가 밥벌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월급쟁이는 알베르 카뮈가 말했듯 부조리에 대항해 다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할지도. 예컨대 욕망을 채우지 않아도,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아도 다 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보여주는 것.


욕구와 욕망의 관계는 공포와 불안의 관계와 흡사하다. 욕구는 구체적이지만 욕망은 구체적이지 않다. 욕구는 분명하고 채워지면 사라지지만 욕망은 분명하지 않으므로 채워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욕망에는 한계가 없다. 마찬가지로 공포는 구체적이지만 불안은 구체적이지 않다. 공포는 분명하고 눈 앞에 대상을 드러내지만 불안은 분명하지 않고 대상도 없다. 불안은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사는 동안은 끊임없이 달라붙는다. 모든 불안은 사실 가난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부에 대한 자유를 더 많은 부를 획득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는 말은 타당한가? 부는 욕구가 아니라 욕망과 관계한다. 르네 지라르가 말했듯 욕망의 삼각형 구조 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욕망은 없다. 욕망은 사회적 관계와 타자로부터 비롯되므로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없고 한계가 없다. 부를 획득함으로써 부로부터 자유를 얻는다는 말은 세상의 욕망이 스스로부터 발현되며, 충분히 통제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는 믿음과 같다. 그런 일은 없다. 오히려 부를 획득함으로써 부에 대한 자유가 아니라 부의 욕망이 인격화 되어 획득한 자를 구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부를 획득해서도 안 되고 부가 없어서도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이를 알게 된 모든 사람들이 당면했던 이 문제를 나는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만 남는다. 


“돈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했겠는가?” 


(죽은 마르크스가 내게 물었다. ‘자본 1권 – 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 8장 노동일’을 읽다 멈추고 생각나는 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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