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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May 06. 2020

가슴이 시키는 일

에베레스트에 오른 어느 월급쟁이 이야기

이틀 밤을 새고 지구 꼭대기, 에베레스트를 가겠다고 결정한 날 아침과 느닷없이 라오스를 가겠노라고 결정한 날 그날 밤. 자유로운 결정에는 일종의 쾌감 같은 것들이 있다. 주위를 온통 감싸는 희열, 시간을 장악한 듯 앞으로 전개될 일들의 주인이 된 느낌 같은 것.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시로 옥죄던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사위가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둘러싸이는 느낌, 지구를 통째로 들어올려 흔들고 들었다 놓았다 하는 착각 같은 것 말이다.


지독하게 평범했다. 나는 월급쟁이다. 16년 전, 월급쟁이 정체성은 처음으로 내 삶을 지배한 이후 주민등록 열세 자리처럼 따라 다녔다. 입사 때부터 멋진 퇴사를 꿈꿔 왔으나 결국 현실에 패배해 온 기록의 나이테. 항상 약간의 피곤함이 동지처럼 어깨에 얹혀 있는 회사인간,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가 통근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인 나는, 뼈 속까지 월급쟁이다. 내 목줄은 직장에 매여 있는 대신 밥을 얻었지만 들판의 이리들이 가진 자유를 늘 그리워했다. 자유를 반납한 대가로 받는 품삯 무게를 천역(賤役)처럼 짊어지고 다니던 어느 날, 밥벌이 중에 에베레스트(8,848m)에 오르려 했다. 직장을 그만 두어야 가능할 것 같은 ‘그 짓‘을 월급쟁이인 채로 하려 했다. 마치 허리춤에 큰 똥통 하나를 차고 길을 나서는 안쓰러움이다.


산에 간다고 돈 나오지 않는다. 돈 나오는 회사는 나에게 산에 가선 안 된다 말했고 나는 가겠노라 버티었다. 가장이 돈을 벌지 못하면 가족은 천대 받는다. 가장으로서 가족이 천대 받는 일은 벌이지 말아야 한다. 그리 살아보려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살지 못했다. 나는 에베레스트에 가고 싶었다. 에베레스트도 나였고 월급쟁이도 나였다. 둘 다 나였지만 하나의 나를 위해선 다른 나를 버려야 했다. 월급쟁이 생활을 과감하게 때려 치고 자신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부러웠다. 나는 그런 강단을 가지지 못했다.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을 생각하면 초라하고 시시한 내 모습이 미워졌다. 단지 산에 가는 일로 직장을 그만 두고 나면 이후의 삶은 거칠어지고 사나워질 게 뻔하다. 나는 그게 두려웠으므로 고민에 끝이 없었다. 어떤 날엔 생각을 굳힌다. 에베레스트로 가야 한다. 또 어떤 날엔 난감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천진한 아이들의 학원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월급에 무릎 꿇고 지구 꼭대기로 향하지 못한 나를 나는 견딜 수 있을까.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꿈이냐 밥이냐를 놓고 머리를 싸맸다. 몇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안에 갈등하는 나는 좀체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길항했다. 입술이 부르트고 나서야 질문 하나가 내 심장을 향했다. “월급쟁이로는 왜 안 되는가?”


당시 나의 위치는 회사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할 과장 직급이었고 팀 내에서는 팀장 다음의 두 번째 위치였기 때문에 큰 프로젝트가 떨어질 때 마다 모든 걸 주도해서 업무를 이끌어나가야 했다. 주말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에서 훈련을 위한 월차나 휴가를 내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원정은 휴가 수준을 넘어 휴직이 아니면 갈 수 없었다. 원정의 총 기간은 출발일과 도착날짜까지 짧게는 70일에서 길게는 90일 정도 소요된다. 어림잡아 두 달 반 정도는 고스란히 원정을 위해 써야 하는 날이 그렇다. 막막해져 온다. 그러나 휴직은 말도 꺼내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도 아득바득 훈련한다. 훈련이 끝난 다음날 다시 출근한다. 어젯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회사 직원들에게 멀쩡한 놈처럼 보여야 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직장에서 제 개인의 일로 아쉬움과 편의를 토로하며 예외로 치부되기는 싫었다. 그래야 갈 수 있다 생각했다. 에베레스트… 혼자 중얼댄다. 밤새 걸었던 산들이 회사 모니터에 그대로 박힌다. 당시, 휴지를 항상 주머니에 휴대하고 다녔다. 언제 어디서 저도 모르게 흐르는 코피 때문에 곤욕을 치른 일이 많았다. 업무보고를 끝까지 마친 후 화장실로 달려가 흐르는 코피를 무표정하게 닦았다. 그래야 비장하다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시 지긋지긋한 훈련에 자신을 구겨 넣는 냉혈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출근해서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사무실 책상에 정좌 하고 사직서를 썼다.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다 쓴 사직서를 작업복 안주머니에 품었다. 편했다. 그리 편할 수 없었다. 아주 긴 싸움을 스스로 끊어낸다. 생각해보니 이 지리하고 길었던 싸움의 상대는 표면적으론 직장이라는 현실이었으나 한 꺼풀 벗겨진 적장의 얼굴은 내 자신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는가, 휴직서를 내밀던 날, 나는 사직서를 품고 들어갔는데 결국 휴직서에 서명을 받아냈다.


지구의 용마루에 오르기를 학수고대했던 시간들이 마치 지금을 위해 존재한 것 같다. 지난 수많은 ‘오늘’들이 장대 끝에 깃발을 올리며 내 승리를 승인한다. 아마 정상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내 승리는 산을 올라야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오른 것이나 진배없다. 네팔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게 내가 오른 산이다. 그것이 내 목적이었다. 벼랑 끝까지 몰고 간 내 고민이 나를 키웠고, 허벅지가 터지는 훈련으로부터 배웠고, 일상을 끊어내는 단절로 정신적 근육을 굴곡지게 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 했는가, 흉내 내는 삶에서 ‘나’로 살아갈 앞으로 날들을 위해서다. 고개를 꺾으며 춤 출 수 있는 시간, 내 생애 가장 위대한 시도, 가슴팍에 사직서를 붙들고 다니며 얻어낸 70일, 그렇게 나는 2010년 5월 17일 현지시간 오전 11시에 지구의 꼭대기 에베레스트 (Everest, 8,848m)에 등정했다.


2010년 5월 17일 오전 11시 (현지시간)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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