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아이에게
근래 날씨가 눈에 띄게 더워졌습니다. 늦은 저녁 산책 길에 불어오는 바람이 싸늘하지가 않고, 이른 아침 창문을 열면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곧 비가 쏟아지겠지요. 쏟아 붓고 내리 쬐어 생명을 키워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지구의 일을 생각하면 더워지는 날씨에 지구의 깊은 뜻이 스며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하염없는 낭비와 비효율의 원리로 생명을 키워내는 지구의 뜻을 인간이 일찍 알았더라면, 혹은 지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됩니다.
얼마전 초등학교까지 개학을 하면서 이제 아이들은 길고 긴 온라인 학습에서 벗어나게 됐습니다. 8개월을 넘게 친구들을 마음껏 만나지 못했으니 이제야말로 바야흐로 본격적인 놀이 시즌이 되겠지요. 놀면서 친해졌다가 싸우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의 낭비와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과 동무들의 감정을 알게 될 겁니다. 자연이 하는 일과 같은 방법으로 말이지요. 하루 종일 실컷 놀고 저녁 즈음 들어온 아이의 머리 냄새를 맡으면 낮에 내리 쬐던 햇빛의 향기가 납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아이 얼굴에 머리카락 두어 가닥이 목덜미에 착 감겨 있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삶의 의지를 느끼게 하는 건 없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키운다고 자주 말 하지만, 그 말의 반은 맞을지 모르지만, 반은 틀린 게 아닐까 합니다. 아이를 키우다니요, 자식들이 크는 건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에 가까울 겁니다. 키워주지 않으면 크지 않는 아이들이 있을까를 생각하면 꼭 그렇습니다. 잦은 실수와 가끔의 뼈아픈 실패, 크고 작은 병마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계의 설움, 이런 것들이 모여 어른이 되어가겠지요. 자연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요. 모든 걸 떠내려 보낼 듯 비를 쏟아 붓고, 다 말려버릴 듯 가물게 하지만, 붉은 열매가 가을에 영그는 모습을 보면 매서운 비바람과 죽음의 가뭄이 없었다면 저리도 탐스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는 사이에 인간이 관여할 일은 조금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식의 실패와 좌절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아픕니다. 마음만 아프고 도와줄 수 없다는 사실,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중에도 어른들이 모르는 조그마한 성공들이 누적되며 근사한 사람으로 커 나갈 겁니다. 그 또한 지구가 하는 중요한 일이니, 꼭 그렇게 될 겁니다. 모든 걸 쏟아내고 선택하는 지구의 방식입니다.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내 아이가 잘 되길 바란다면, 지구를 믿으세요.
더워지느라 그런지 바람도 잦아드는 중에 어제 산책 길은 마지막으로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에 마음까지 맑아졌습니다. 숲 속 우거진 곳으로 귀를 기울이니 소리 낼 수 없는 것들이 바람에 스치어 소리를 냅니다. 불현듯 그 소리가 얼마나 난해하던지 소리를 쪼개 분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림없는 일이지요. 본질을 향한 인간의 허영심이 더는 투영될 수 없는 영역이 이 세상엔 많습니다. 그 바람은 이쪽으로 가며 소리를 내고 저쪽으로 쏠리며 닳고, 사위어가고, 무너지는, ‘시간’이 내는 소리였을 겁니다. 풍화되는 인간에도 한번 이 바람이 스치면 알 길 없는 시간으로 미끌어져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아이는 고유한 바람입니다. 스스로 일어나고 잦아들었다가 닳고 부딪혀 자신만의 중의적인 소리를 내는 낭랑한 바람입니다. 그 바람 안으로 쪼개 분석하고 조언하려는 경박함이 들어서지 않기를 다시 한번 조용히 다짐해 봅니다.
산책 후에, 불안한 얼굴로 아이 문제를 의논하러 오셨던 그 밤, 부모 된 마음으로 함께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누었던 말이 우리 모두의 마음임을 압니다. 부디, 호찌민의 모든 바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미루나무’ 예쁜 잎사귀들을 보우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