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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Dec 29. 2021

변화경영연구소 기고를 마치며


2019년 1월부터 오늘까지 지난 3년간 변화경영연구소 필진으로 활동하며 매주 한 편의 글을 기고했다.

오늘 마지막 편지를 보내며 그간의 일들이 촤라락 지나간다.

출장가던 길 비행기 안에서 편지 쓰던 일,

업무와 전화가 빗발치던 중에 될 때로 되라며 꿋꿋하게 편지 썼던 날,

화요일 밤늦게 편지를 보내고 마당에 나가 맡았던 풀냄새, 자식같은 글들을 세상에 토해내던 3년이었다. 고생 많았다.


마지막 편지


어떤 주제였든 글에서 제 삶을 떠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삶을 철학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같잖은 생각을 붙잡은 탓이지만, 철학하기 위해 삶이 필요한 게 아니라, 사는 데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는 쓸데없는 고집은 여전합니다. 그렇지요, 지금에서야 말씀입니다만 마음편지의 시작이었던 라오스에서 나를 두렵게 만든 건 어이없게도 흙 바닥이었습니다. 사람은 단순합니다. 이 길은 왜 잘 닦여진 아스팔트가 아니고 정돈된 보도블럭이 아닌가, 더럽게 흙이 묻은 신발을 보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도전이고 뭐고, 순간 겁이 났었던 그 기억이 제겐 가장 강렬한 기억이었습니다. 그때 그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 고귀한 철학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흙바닥의 경험은 스스로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권리나 권력을 버리고 떠나온 자들은 보호받을 길 없는 삶의 몰락을 선택한 자들인데, 아무런 백그라운드가 없는 그냥 온전한 사람, ‘저스트 맨’으로서 내던져진 삶을 살면서 ‘다 사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마음편지 3년을 끌어온 서사의 힘도 아마 여기서 나온 게 아닐까 합니다.


라오스 이야기에서 시작된 글은 베트남을 잠시 거쳐 회사인간과 월급쟁이 이야기로 이어졌었습니다. 이후 산을 주제로 했던 글은 최근, 그러니까 종국에는 마르크스와 삶에 대한 어설프고 주관적인 잡문에 이르러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다행이다 싶습니다. 조금 더 나아갔다면 중언부언하는 맥락 없는 글로 제 바닥을 드러냈을 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 겨우 잡스러운 글이 방향을 찾아 간다 싶은 생각이 드는 중에 펜을 놓게 되니 갈 곳 잃은 글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지금 제가 있는 곳이 해외이고, 해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을 떠나올 때부터 내 것의 일부를 내려놓지 않았다면 올 수 없었던 곳일 테지요. 태어난 김에 산다고 했던가요, 이왕 내려놓은 김에 삶의 우선 순위를 스스로 바꾸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조금 바꿨습니다. 우선 나에게 회사와 일은 한국에 있었을 땐 첫 번째 순위에서 서너 번째로 밀렸습니다. 일터에서 최고가 되려는 노력을 중단했습니다.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건 더는 내 삶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각성 때문이지요. 성과에 대한 성취감, 승진의 짜릿함, 인정받는 자의 포근한 소속감 같은 것들은 이제 좋아 보이지도, 근사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일은 내 가족의 안정적인 생활을 지탱하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직장에서 해야 하는 최선의 노력을 제 삶을 사는 데 쏟았습니다. 책 읽고, 글 쓰고, 배우고, 여행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과 돈을 썼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음편지의 역할은 컸습니다. 의도치 않게 내 삶의 중요한 순간에 번뜩 기어나왔던 동남아 생활은 마음편지와 버무려져 삶의 커다란 오아시스가 됐습니다. 졸필의 세 권의 책은 모두 한국을 떠나 이곳에서 쓰여졌으니 개인적으로는 조셉 캠벨의 우드스턱 못지않은 Great depression이자, 다산의 유배지 강진 다산초당에서의 과골삼천踝骨三穿에 감히 빗대 봅니다. 내 결정으로 내 삶을 움직일 수 있는지, 시킨 일만 하는 세월에 묻고 싶었던 것인데 사실, 수도없이 질문하다 보니 답 속에 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이 질문은 2012년 구본형이라는 사나이를 만나면서 제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지금도 삶의 곡절을 비켜갈 때마다 스승님 생각이 납니다. 한때 동시대를 살았던 동지로, 기가 막히게 잘 살았던 인생의 선배로, 훌륭한 예지와 근사한 품격을 갖춘 인격적 스승으로 그를 불러냅니다.


마음편지 독자 여러분,


사는 동안 특별하고자 노력했으나 특별하진 않았고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로 저는 살고 있습니다. 이뤄냈다 라고도 할 수 없는 작고 변변찮은 성취들은 삶의 곳곳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합니다. 밥과 꿈 사이, 굴종과 해방, 억압과 자유 사이를 늘 떠돌고 그것들의 중간 어디쯤에 편안한 자리, 사납지 않은 곳,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지점에 거처를 두고 삶이 거칠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삽니다. 아직 늙발은 아니지만, 나잇살 먹어 돌아보니 지나간 삶은 움켜쥔 손의 바람처럼 빠져나가고 없습니다. 아마 남은 삶도 그러할 테지요. 청승과 주책과 비열한 노회함과 수전노의 쪼잔함이 얽혀 스스로 실망한 나날이 뻔하게 보입니다.


사는 동안 약간의 몸부림을 치겠지만 내 과거와 삶의 고비마다 보여왔던 배포로 미루어보건데, 삶을 통째로 바꿔버리는 일은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마침내 아무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뾰로퉁한 얼굴로 정지될 테지요. 후회라는 것을 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사는 것이라면,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또 늘 당당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붙잡는 월급쟁이 정체성 앞에서 저는 여전히 엎어집니다. 그나마 마음편지라는 손잡이를 잡으며 넘어지지 않고 위태롭게나마 버틸 수 있었다는 사실에 독자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대부분 나 자신이었을 수 있었던 나를 만나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른 채 죽는 것이지요. 회사에서의 직책, 가족 안에서의 역할, 사회적인 관계, 돈벌이, 생계 같은 제약이 내가 될 수 있었을 나를 온 힘으로 막습니다. 이것은 삶이 삶을 스스로 배신하는 것일 텐데, 이런 것들이 죄다 소거된 ‘나’를 언젠가 만나보고 싶은 것이 저의 조그만 소망입니다. 그럴러면 질식당하고, 힘들고, 소진되고, 파괴되는데도 그것을 헌신이라 말하지 않는 것, 아프고, 어렵고, 재미없는데도 그것을 소명이라 말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요. 그렇게 나아가보겠습니다. 편지를 쓰며 화자와 독자를 따로 염두에 두지만, 제가 썼던 마음 편지글은 사실은 스스로 다짐하고 협박하며 독려했던 저의 독백이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부끄러운 제 독백을 호응해 주시고 답장 주시면서 매주 아름다운 수요일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물론 먼 나라에서 응원해 주신 독자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연구소 홈페이지에 늘 댓글로 공감해 주신 백산 선배님, 최우성 선배님께도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음편지 독자 여러분, 지난 3년간 저의 못난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테나를 우주로 세워 독자분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Hang in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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