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내게 남긴 유산 같은 이야기
2012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터키 이스탄불 뒷골목 빵집에서 스승과 나는 작은 야외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빵을 사거나 구경하느라 빵집 안에 있었고 나는 빵 살 돈이 없어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스승은 번잡한 빵집에서 일찌감치 에스프레소 한잔을 가져 나와 밖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똥 눌 곳을 찾는 개처럼 어슬렁 대는 나를 보곤 당신 앞에 앉으라고 했던 것이다.
스승은 커피 한 모금을 말없이 마시고 소주잔 크기의 아기자기한 작은 잔을 테이블에 아주 천천히 내려 놓았다. 어색한 침묵이 10초간 이어졌다. 나는 몸 둘 바 몰랐지만, 태연한 척을 했다. 먼 하늘을 한참 바라보던 스승은 에스프레소를 입술에 살짝 갖다 댄 뒤 나에게 밀어주며 ‘너 마셔라’고 짧게 말했다. 손바닥을 바짝 세우고 사양하는 내 말을 미리 끊으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너는 이 도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느냐’
낮게 깔린 그의 목욕탕 목소리는 이미 눈부신 장면에 있었고 어떤 찬란한 것을 본 사람처럼 눈을 반쯤 뜨면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럽은 그의 뒤편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 콘스탄티누스는 아시아를 바라보고 있는 이곳에 세계의 중심지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는 도시의 경계를 긋는 날을 정했다. 자주빛 황제의 옷을 입고 한 손에 창을 들고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병사들의 앞에 서서 진군을 시작했다.
그는 창으로 땅에 선을 그으며 천천히 나아갔다. 그러면 수행원들과 측량사들이 정확히 표시했다. 이 날은 국경일이었기 때문에 황제의 뒤로 조신과 병사와 일반 시민들이 길게 따르고 있었다. 황제는 들판과 과수원과 올리브숲과 월계수 숲과, 소나무 숲을 지나고, 작은 시내와 언덕을 넘어 계속 행진했다. 사람들은 뒤를 따라오면서 수도의 면적이 엄청난데 놀랐다. 그 중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그 동안 지나온 땅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를 세우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내 앞에 걸어가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안내자가 멈출 때까지 계속 걸어 갈 것이다” 황제는 대답했다. 이렇게 하여 황제는 다섯 개의 산을 넘어 다시 바다에 닿을 때까지 걸어갔다.’
즉시 대역사가 시작되었다. 수백만의 노예들이 현장에 투입되었다. 푸로코네수스 섬에서 파낸 대리석을 가득 실은 배들이 선체를 물에 깊숙이 담근 채 골든 혼 항구로 줄지어 밀려들었다. 북쪽으로부터는 흑해에서 목재들이 실려왔다. 모르타르를 만들기 위해 석회를 굽는 연기가 치 솟고, 수천의 노예들이 땅을 파고 물건을 나르고 땅을 고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황제는 자주빛 망토를 두르고 항구로 나가 이 모습을 지켜보며 즐겼다. 이렇게 하여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문명 세계의 중심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간 해는 334년이었다. 고도 로마는 빛을 잃었다. 그리고 이후 로마 제국은 끝이 났다. 고대 유럽은 혼돈과 폭력과 소요와 무질서 속에 홀로 남아 있게 되었다. 빛은 동방으로 옮겨갔다. 이것이 비잔티움 제국의 시작이었다.
나는 넋을 잃고 그의 이야기에 빨려 들었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 사람들이 빵집에서 흰 봉다리에 빵을 한가득, 누군가는 입에 빵조각을 물면서 나왔다. 침묵 속에 있던 세계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며 나는 꿈에서 깬 듯 정신이 돌아왔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그가 굵은 목소리로 나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다. 내가 이런저런 낮은 삶을 살면서 길을 찾지 못할 때 나는 늘 이 이야기를 떠올린다. 나는 자줏빛 황제의 옷을 입은 사람이 되어 얼굴을 가린 종마에 올라탄다. 왕의 홀을 한번 하늘로 찌른다. 이내 홀을 거꾸로 늘어뜨리고 한 손으로는 말 고삐를 다시 한번 꼭 움켜잡는다. 낮게 공중에 뜬 듯 발 뒷굼치로 힘차게 박차를 내지른다. 나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다. 나는 다시 인간 저 위로 높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