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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최전방 GP에서

9월 19일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상징조치로 어제부터 감시초소인 GP에 근무중인 병력과 장비를 철수하기 시작했다.


과거 수십 년 동안 남북이 으르렁거리며 총부리를 겨누었는데 이런 때가 오다니 격세지감이다.


오래 전에 내가 판문점 인근 1사단 244 GP에서 포병관측장교로 4개월간 근무할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군사분계선을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2km 비무장지대를 만들어놓아 서로 경계를 하는 목적으로 요새처럼 만든 것이 GP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발령받기 1개월 전, 그 GP는 관할 보병중대장인 석정현대위가 여자문제, 돈 문제 등으로 월북한 곳이었고, 서강대 출신인 ROTC동기인 김용찬이 그 GP 바로 옆에서 작업을 하다가 지뢰를 밟아 죽은 가슴 아픈 곳이었다. 


매미가 울기 시작한 초여름, 2~3중으로 개폐된 거대한 사단 남쪽 출입문이 ‘쾅’ 하고 굳게 닫히고, GP에 도착할 때까지 구불구불 2km 남짓, 나는 부하사병들을 뒤에 태우고 지붕 없는 지프 앞자리에 방탄복을 입고 권총을 차고 의젓하게 앉아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 우리를 공격할 지 모를 전방의 북측을 경계하며 울창한 수풀 속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처음으로 GP에 도착한 그 10여분간… 긴장하고, 떨렸던 나의 새가슴은 평생 잊지 못하리라! 


그 GP는 포병과 보병, 그리고 군단에서 파견된 군견병, 방송병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나를 포함한 포병 5명은 망원경을 통해 북측의 동태를 감시하며 상위부대에 보고하였고, 보병 소대장인 동기 김윤중 중위(동아대) 휘하 30명 사병들은 밤낮으로 돌아가며 GP를 경계, 관리했다. 


그 당시에는 TV 등 이렇다 할 오락시설도 없었지만, 사기는 충천하여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북한과의 거리가 400~50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아 가장 먼저 포사격을 당해 우리 GP가 무덤이 되어도 우리는 개미집처럼 꾸며진 벙커속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보병 소대장 김중위는 모처럼 회식을 한다며 몰래 준비한 술이 있다고 포병대원인 우리들까지 내무반에 오게 하더니, 군대에서 더구나 이런 최전방에서 절대 금지된 술이라 나를 놀라게 하였다. 


그는 많은 장병들이 보는 앞에서 보온병을 꺼내더니 나에게 먼저 술잔을 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온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왔고, 그윽한 향기를 피우더니 짙은 갈색 커피를 따르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다방 커피가 맛있는데, 그 때 마신 커피는 정말 맛있었고, 그가 보여준 행동에 미소 지을 따름이었다. 


그 후 나는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북쪽을 쳐다보며 야간경계를 서고 있는 사병들에게 다가가 보온병에 든 커피를 한잔씩 따라주면서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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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이라 높은 산이 없었고, 조그만 언덕 같은 우리 GP는 사방 둘레가 겨우 200미터 정도로 좁았는데, 한낮에 족구라도 거칠게 하다 보면 공이 철조망을 넘어 지뢰밭에 가기가 일쑤여서 바로 눈앞에 20여 개 축구공이 보이는데도 철조망에 가로막혀 꺼내지도 못하고 아쉬웠다. 


그래서 탁구가 가장 인기였는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쳤는지 GP파견을 마치고 10월 자대에 복귀하여 대대체육대회에서 내가 100명 우리 부대원들을 물리치고 브라보 포대 탁구대표선수로 나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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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GP는 워낙 북쪽 GP와 가까와 특히 비 오는 날에 북측에서 대형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북한여성 특유의 목소리는 마치 귀신 곡하는 소리 같아 처음에는 소름이 끼쳤지만 나중에는 이골이 났고, 이른 새벽에 그들과 대면하며 깔대기를 통해 농담을 나누거나, 환한 대낮에 대형거울로 서로의 얼굴을 비춰가며 놀던 것은 이병헌,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나는 ROTC장교 출신이라는 것과 특히 GP에서 근무한 것에 감사한다. 


남북으로 갈라져 수십 년 동안 청정무구지역으로 보존되었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는 위험한 지역이지만, 나는 그 곳에서 수개월간 갇혀진 채 세상 모르고 살았으니 언제 그런 기회가 또 있겠는가 말이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 내가 근무했던 그 GP에서 탁구 치며, 족구하며, 밤에는 우리 머리 위까지 내려앉은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우리 아이들과 커피 한 잔 나누며 옛날 아빠가 겪은 군대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도 철통같이 경계해야겠지만, 남북이 화해모드로 진행되어 내가 근무했던 그곳을 구경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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