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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클래식 유감


어제저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성악가와 팝페라 가수가 공연한 가을맞이 콘서트는 성황리에 끝났다.


야화' 가수로 유명한 이경오 씨(1981년 제2회 MBC 강변가요제 대상, 별이여 사랑이여)가 10년 전부터 매년 한차례씩 기획하고 공연해 왔는데, 나는 친구인 그에게서 지난주 S석 40장을 구매했다.


나는 그만큼 소화할 능력은 전혀 없었지만, 그동안 매번 공짜로 구경하기에는 미안해서 친구를 도울 겸 콘서트를 홍보하고, 내 거래처에 CS차원에서 선심이나 쓰려고 가성비 좋게 구입했다.


나는 즉시 클래식에 관심 있어 보이는 거래처를 선정하여 메시지를 보냈으나, 관심이 없다거나 아쉽게도 선약으로 갈 수 없다고 하여 반응이 좋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지방에 있는 거래처에도 연락했으나 예상한 대로 거리가 멀어 마음만 받겠다고 하였다.


오 마이갓!


졸지에 강매당한 S석 40장은 그 절반도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아 주말 내내 그동안 내가 신세 졌거나, 자주 연락하지 못한 친구들까지 무려 100통 전화, 문자로 연락하며 이 참에 공짜 티켓으로 세종문화회관에 한번 구경 가는 것은 어떠냐고 종용하였다.


나 같으면 얼씨구나 하면서 선약도 깨고 일부러 갈 텐데, 생각보다 클래식에 관심을 보이는 지인들이 거의 없었다.


클래식 중에 특히 성악을 좋아하는 나는 궁핍한 대학시절에도 용돈을 모아 1년에 한두 번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가곡의 밤 콘서트에 갔었다.


그러다 보니 한때는 그 당시 웬만한 성악가들의 노래만 들어도 누구이며, 어느 대학교수 인지도 알았다.


그런데 남들이 얘기하는 수준 높고 고상해 보이는 정통 클래식은 TV는커녕, 라디오 일부 FM방송 외에는 요즘 거의 들을 수도 없어 안타깝다.


내 어릴 적에는 중고교 시절부터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어려운 살림에 비싼 렛슨비를 내고 공부한 후에, 멀리 이태리 등에 유학하여 교수가 된 친구들이 몇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세계적인 성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해도 국내에 설 자리가 없어 대학 시간강사를 하거나, 노래교실에 다니고, 또  아예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거래처 한 곳에만 2장을 드리고,  나머지 38장 티켓은 시간이 지나면 휴지조각이 될 것 같아 친척, 중고교, 대학, 군대, 직장동료, 그리고 평소에 소식이 뜸했던 지인까지 연락했다.


나는 수년 전부터 이경오 씨가 기획한 공연을 몇 차례 가봤지만 어제 공연은  진행방법, 레퍼토리, 분위기 연출이 색달라 재미있었고, 그리고 세계적인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화려한 출연진이 총출동하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무척 좋았다.


소프라노도 좋았지만, 바리톤 곽상훈 씨의 웃음 주는 제스처에 대포 같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고, 특히 테너 김정규, 김철호 씨가 네순 도르마, 뱃노래를 시원하게 불러젖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보냈다.


또한 팝페라 가수인 이경오 씨는 '고엽', '야화'를 늦가을 분위기에 맞게 부드러우면서 묵직한 목소리로 노래하여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한편 현직 의사인 테너 엄의용 씨는 국내 콩쿠르에도 우승한 실력파 가수인데 타고난 미성으로 노래하여 인생 멋있게 사는 모습이 부러웠다.


요즘 웬만한 대학교 실용음악과는 보통 100 대 1의 경쟁률을 자랑하고 있어 그 인기를 실감한다.


그러다 보니 정통 클래식은 점점 설자리가 없어지는데 클래식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콘서트는 매우 뜻깊은 공연이었다.


내 양복 주머니에는 딱지나 접을 S석 티켓이 아직 12장이 남아 있지만, 오늘 아침에 여러 곳에서 연락 온 감사의 메시지가 나를 훈훈하게 하였다.


''어제 규 선동기 덕분에 럭셔리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고, 모처럼 마누라한테 점수도 따는 기회가 되어

정말 고마웠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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