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규선 Sep 13. 2021

나의 빙판사고


어제 어머니를 모시고 오랜만에 전가족이 모여 식사를 함께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제수씨의 친정아버지가 최근에 빙판에 넘어져 고관절 골절상을 당해 종합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하여 가슴이 아팠다.


수년 전의 일이다.


손아래 동서가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크게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고속으로 질주하던 가해자 차량이 우물쭈물하던 앞차를 앞지르려다가 차 간 거리가 짧아 옆 차선에서 운전하던 동서 차를 박아 동서의 차는 반파되어 폐차되었다.


 하마터면 조수석에 누군가 있었다면 생명의 위험이 있었을 것이나, 다행히도 동서는 약간의 찰과상만 입어 병원 치료를 받았다.


 나는 병문안을 하면서 평생 액땜한 것이고, 천만다행이라고 그를 위로하였다.


 그 며칠 후 나도 빙판에 미끄러지는 차사고를 당했다.  


자세히 설명하면, 아파트 노상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문을 닫고 나오다가 순식간에 앞으로 고꾸라진 것이다.


햇빛을 등진 아파트 주차장은 그늘져 겨울이면 얼음이 잘 녹지 않은데, 동틀무렵이라 어둑어둑한 상태였다.


나는 내 몸 하나 겨우 지나갈 좁은 옆 차 사이 공간을 조심스럽게 나오려다가 마치 커다란 나무판자가 우뚝 서 있다가 자빠지듯이 내 얼굴이 90도 각도로 수직 하강하며 그냥 빙판 위에 꽝하고 부딪쳤다.


 손쓸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아찔했지만, 치아가 정상적으로 붙어있는지 혀를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다행히 옥수수는 가지런하게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목을 좌우로 돌려보니 턱도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경이 안 깨지고, 눈이 멀쩡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빙판 위에 30초쯤 엎어져 있다가 일어나 보니 입술이 찢어져 피가 났고, 갑자기 통증이 왔다.


 그때 순찰 중인 경비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는데, 평소 같으면 소리 내어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하지만, 나는 피 묻은 입 주변을 손수건으로 가리고 그냥 목 인사를 한 후 집으로 들어갔다.


피투성이가 된 내 얼굴을 본 가족들은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거울을 보니 크게 다친 곳은 없었고, 손으로 치아가 흔들리는지 다시 만져 보았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그 후 며칠간 퉁퉁 부은 입술 때문에 오랑우탄이 된 입을 마스크로 가린 나를 보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독감이 심하니 조심하라고 능청을 떨었다.


만일 내가 그때 빙판이 아닌, 돌부리에 얼굴이 부딪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도 하기 싫다.


운동신경이 있는 사람이라도 아주 잘 닦아진 거울 같이 미끄러운 빙판에, 그것도 잡을 곳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는 나같이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차 사고, 아니 빙판사고를 당한 나의 얘기를 듣던 지인이 전하는 말이 걸작이다.


자네는 워낙 이빨이 세서 사고가 경미했고, 헤드헌터가 천직이야!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작가의 이전글 크리스마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