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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크리스마스 1


오늘은 크리스마스날이다.


어렸을 때는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날이었는데,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무감각해진 것인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서울 을지로입구에 있는 청계초등학교 5학년 때 여자 친구가 인근에 영락교회로 나를 인도하였다.


그 당시 다들 어려운 시절이어서 크리스마스 때라 학용품 선물도 준다고 해서 구경삼아 따라갔다.


그때 가본 교회가 엄청  컸는데, 그 많은 아이들 중에 내 예쁜 여자 친구가 아기 예수 관련 아동극의 주인공이 되어 열연한 모습을 보고 더 놀랐다.


마치 엘리자베스 테일러같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이 큰 친구가 그런 재주가 있었다니 부러웠고, 내가 전학하면서 헤어졌지만 그 얘가 혹시 탈랜트나 영화배우가 되지 않았을까 하여 한동안 TV도 주목해 보았다.


누구나 그렇듯이 1970년대 중고교 학생들이 남녀공학이 아니라면, 합법적으로(?) 이성친구를 만나는 곳은 교회가 유일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친구의 소개로 중3 크리스마스 즈음에 광화문에 있는 S교회를 갔다.


그곳은 별천지였다.


까까머리, 단발머리 학생들이었지만, 특히 여학생들은 다양한 학생복을 입었는데 학생중앙의 표지모델 같은 예쁜 얼굴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지만, 그들도 나와 같은 부류라는 생각이 들면서 서서히 무리 속에 끼어들 수 있었다.


뺑뺑이 1호 고등학생이 되니, 내 주변에는 경기고, 서울고, 그리고 경기여고, 이화여고 마크가 빛나는 선배들로 둘러싸여 귀염도 받았지만, 한동안 주눅도 들었다.


2 때는 성가대원 108명(집사님들 포함) 이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를 방문하여 캐럴을 불렀다.


그때 생전 구경도 못한 많은 사탕과 과자가 넓은 테이블 위에 한라산처럼 수북하게 쌓여있는데, 정작 나는 성가대 학생대표라 대통령 비서실장과  얘기하느라 제대로 먹거나, 가져오지도 못했다.


대학 때는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후에 소고기 뭇국을 먹고, 광화문 주변에 사는 교인 집을 일일이 방문하며 새벽송을 돌았다.


처음 가보는 집이라 어떻게 사는지 보는 게 재미있었고, 그들이 내주는 커피와 과일을 먹으며 한겨울 추위를 달랬다.


요즈음 아파트가 많아 새벽송 도는 것이 민폐라 없어지거나 축소되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즐거웠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지금도 등산하며 매달 만나는 S교회 친구들 중 4명이 한국과 미국에서 목사가 되었고, 만날 때마다 그 시절 얘기를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나는 순진무구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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