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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비 오는 날


토요일인 오늘 아침부터 바람을 동반한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수주 전부터 준비한 대학 등산모임이 태풍 콩레이로 인해 주말에도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를 접한, 그젯밤 친구 전화에 나는 금요일 오전에 연락 주겠다고 하였다.


산악대장 겸 산보 대장인 나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는데 도저히 대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번 등산모임은 지난 6월 성균관대 후문 와룡공원에서 문화유산이 많은 성북동을 지나, 낙산공원 그리고 동대문역까지 산보했을 때 모처럼 참석한 친구가 딸이 로펌에 합격했다고 대낮부터 크게 한턱 쏜 후 거의 4개월 만이었다.


올해 날씨가 예년 같지 않아 그때부터 덥기 시작하여 8월 말까지 낮에는 한증막처럼, 밤에는 열대야로 무더위와 싸워 바쁜 9월 일정을 지나서 겨우 선택한 가을 첫 모임이었다.


이번 모임은 지난번 산보와는 달리, 북악산을 오르는 힘든 코스여서, 신분증을 지참하고, 제법 등산 기분을 내며 부암동, 평창동의 그림 같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호기였다.


더구나, 빙상의 여왕인 김연아의 아빠가 지인 결혼식에 참석한 후에 뒤풀이 때 맞춰 오랜만에 나온다고 해서 기대가 컸었다.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연아 아빠는 느린 말투에 가끔 툭툭 던지는 익살로 좌중을 웃겨 누구나 반기는 그런 친구다.


그런데 비 오는데 어디 가야 하나, 아침부터 술 한잔 하며 수다를 떨며 놀까 하다가, 나를 포함한 등산 핵심 멤버들이 대체로 술에 약해  포기하였고, 결국 비를 피할 방법이 없어 11월 초로 연기하였다.


엉덩이가 가벼워 주말에 더 바쁜 나는 이참에 홍대 앞에서 여는 와우북 축제를 간 후에, 마포에 혼자 계시는 모친과 우중 데이트를 하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잠실대교를 지나 모친께 전화드리니 어제 많이 돌아다녀 피곤하다며 드라이브도 싫고 그냥 쉬겠다고 하신다.


오 마이갓!


웬만하면, 큰아들이 가자는 곳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다하지 않고 가셨는데 오늘은 무척 피곤하신가 보다.


홍대 인근에 도착하니 하얀 천막이 길게 펼쳐져 있어 축제 분위기는 띄웠지만, 차창을 통해 천막 안을 들여다보니 비를 막으려고 모두 닫혀있었고, 사람들도 거의 없어 어제부터 시작된 와우북 축제는 확실히 개점휴업이었다.


이 기회에 베란다에 놓을 꽃이나 사려고 인근 점포와 시장을 두리번거렸지만, 내가 찾고 있는 꽃은 봄에나 나온다며 몇 송이 핀 화분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키우기는커녕 내 재주로는 죽일 것 같아 이리저리 걷다 보니 비도 찔끔찔끔 내리고 있어 금방 개일 것 같았다.


차에 올라, 다시 와우북 축제에 갈까 하다가 라디오에서 여의도 불꽃축제는 진행한다고 해서, 비가 그칠 것을 알고 포기하지 않은 주최 측의 혜안에 놀랐다.


나는 평소에 시간이 없어서, 차가 막혀서 가보지 못했던 서울의 변두리를 돌아다니다가 집에 들어와 한잠 푹 쉬고 난 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왜 내가 이번 등산모임을 오전 10시가 아니고, 오후 3시쯤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판단력과 용기가 없었나?


그러면 늦은 오후에 맑게 개인 가을 하늘을 쳐다보며, 들국화와 코스모스 길을 걸으며, 그동안 지내온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만일 비가 계속 내리면, 종로 5가 방산시장에 가서 순희네 빈대떡이나 사 먹으면 되지 뭐!


"비가 오면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옛 노래에 나오듯이 말이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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