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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없는 웃음이

라일락 꽃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수 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래요


윤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 (1972년) 가사이다.


나의 학창 시절의 얘기를 이렇게 잘 표현한 노래가 또 있을까?


누구나 나이가 들면 과거 아름다운 추억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1970년대 통기타와 포크송, 그리고 청바지와 장발로 대표되는 시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고교시절 및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 나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한다고 하여 “먹고 대학생”이라는 소리를 가끔 듣기도 했다.


 특히 3학년 때부터는 ROTC 장교 후보생이라고 하여 마치 군대생활을 하듯 대학을 다녀 학창 시절에 대한 낭만은 없으나 지금 그때가 다시 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우리는 라일락꽃 피는 캠퍼스 곳곳에 빙 둘러앉아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고,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며 사랑, 낭만, 지성, 그리고 인생을 얘기하곤 했다.


조금 노는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강의실 한쪽에 모여 포커나 마이티를 하거나, 학교 앞 당구장에서 죽 치고 있었고, 하물며 대낮에도 막걸릿집, 소줏집을 기웃거렸다.


또한 나도 가끔 공강 시간이면 야구장에 가서 안타제조기 장효조, 투수 김시진의 멋진 플레이, 그리고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의 재미있는 원맨쇼를 보곤 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다방에 앉아 팔각 성냥통을 갖고 별별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냈고, 장발단속에 걸릴까 봐 순경을 피해 가며 다니는 등 자유와 굴레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었다.


대학 입학 후 한동안은 미팅에 나가 뽑기를 통해 나의 파트너가 누굴까 마음 설레었고, 미팅이 끝나자마자 우리들은 각자 파트너를 “킹카, 옥돌매”라고 비교하며 놀려대었다.


또 왜 그리 데모가 많은지 최루가스로 콧물, 눈물범벅이 되었고, 몇몇 골수분자들은 수업을 아예 빼먹고 자기가 아니면 해결이 안 되는 듯이 선두에 나서서 마이크를 잡으며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데모를 주동하곤 했다.


뻔한 용돈과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는 극장에 갈 여유가 안되어, 시간이 나면 경복궁 앞에 있는 프랑스 문화원을 드나들면서 “금지된 장난” 같은 프랑스 영화를 보며 빠르게 지나가는 영어자막을 해석하느라 눈이 아팠다.


나는 조금 고상한 축에 끼여 무교동에 있는 클래식 음악감상실인 르네상스에 가끔 갔는데,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마치 예술가처럼 폼 잡고 고전음악을 들었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또한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종로 2가에 내려 종로서적, 양우당에 들어가 그 당시 베스트셀러 책을 다리가 아프도록 몇 시간이고 서서 읽었고,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당주당, 미리내”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라면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다.


매년 고교 송년회 때는 나는 참석한 동기들에게 모두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돌아가면서 피날레로 윤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를 부르게 하였다.


비록 오래된 노래였지만, 우리는 즐거웠던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마치 그 노래의 주인공인양 크게 소리쳐 노래했다.


강남역에 있었던 “우리들의 이야기” 패밀리 레스토랑은 그 이름이 주는 풋풋한 이미지 때문에 자주 갔는데 수년 전에 문을 닫아 무척 아쉬웠다.


노래건 식당 이름이건 “우리들의 이야기”가 주는 느낌은 아마 비슷할 것이다.


비록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를 부르는 우리는 언제나 청춘이고, 과거나 현재나 항상 우리 속에 있으며, 우리가 만들어 갈 것이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컨설턴트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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