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규선 Sep 14. 2021

모친의 노인대학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에 다녀오마!" 도 아니고, 배웅하는 우리에게 코믹하게 꾸벅하며 인사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유치원생이다.


모친은 그동안 집에서 TV를 보거나 낮잠을 자는 등 무료하게 생활했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송파구에 있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다.


그런데 처음에는 코로나가 위험해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겠다고 하시기에 그곳은 모두 백신 2차 접종을 마쳐 안전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을 그리며, 또 친구도 사귀어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어 좋다며 설득하였다.


모친은 마포에 혼자 사실 때 코로나가 발병하기 전까지 매주 한번 마포구청에서 운영하는 노래교실에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지금은 해체되어 무척 아쉬워하셨다.


그러다 보니, 뇌경색을 앓고 있어 인지기능이 떨어진 모친에게 '주간보호센터'나 영어로 된 '데이케어센터'를 얘기하는 것이 무리라서 나는 비슷한 느낌이 나는 '노인대학'이라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수 없이 말씀드렸다.


그런데 모친은 마포 노래교실에 미련이 있어서 그런지 아직도 노인대학을 '노래교실'이라고 불렀고, 나는 질세라 "먹고 대학생이 노인대학에 다니시네요!" 하며 웃으며 얘기하였다.


노래교실이나 노인대학이든, 모친은 언제 가느냐 물었고, 나는 다가오는 월요일이며, 등하교 모두 집 앞까지 차로 서비스한다고 말씀드렸다.


드디어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분홍색 상의에 알록달록한 긴치마를 입고 소파에 앉아 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친에게 나는 1시간 후에나 오니 그때 알려드리겠다고 하였다.


드디어 9시 등교시간이 되었고, 모친이 손가방을 갖고 있기에 나는 잃어버릴 수 있고, 또 공부하는데 방해된다며 그냥 빈 몸으로 가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잘 적응하는지 오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가봤고,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는 없었는데 첫날부터 큰 해프닝이 발생했다.


평소 조용하고, 배려심이 강한 모친이 오후 5시 하교할 때 손가방이 없어졌다며 나에게 전화하신 것이다.


나는 당황하는 모친에게 "처음부터 가방을 안 갖고 가셨으니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며 센터장님께 사과하라고 말씀드렸다.


센터장은 전문가답게 웃으면서 "이런 일이 종종 있으며, 오해가 풀려 다행이네요" 하면서 모친을 오히려 걱정하였다.


귀가하여 자초지종을 얘기하신 모친은 그때 쓰러지는 줄 알았고,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이 친절했다고 하셨다.


화요일 아침,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픽업 나온 운전기사와 요양보호사에게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하셨고, 차 안에 있는 할머니들에게도 꾸벅 인사하셨다.


수요일 오후 귀가한 후에, 모친에게 그곳 생활이 어떠냐고 물으니, "노래도 가르쳐주지 않는 노래교실이라 재미없다"라고 하셨다.


이에 나는 그곳은 노래만 하는 곳이 아니라, 첫날은 화장실 휴지걸이를 만들었고, 둘째 날에는 예쁜 화분을 갖고 오신 것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병을 빨리 낫게 만드는 좋은 곳이라고 설명드렸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운영하는 밴드에 들어가 30명 학생(?) 중에 눈에 확 띄는 예쁜 옷을 입고, 열심히 노래하고, 가장 높이 손을 흔들며 춤추는 모친의 모습을 보여주니, "세상 좋구나! 누가 이것을 다 찍었냐? 네가 몰래 찍었냐?" 하면서 웃으셨다.


지난 목요일은 모친이 병원에 가느라, 금요일은 집안 행사로 빠졌다.


밴드에 또 들어가 이틀 동안 모친의 빈자리를 보여드리니, "그곳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들 기운이 없고, 칙칙한 노인 옷을 입었으며, 머리 염색한 사람도 몇 명 없다"라고 하면서 씁쓸해하셨다.


이에 나는 엄마가 가장 세련되었고, 마음까지 젊어 노인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장학금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뻥을 치면서 사기를 북돋았다.


시도 때도 없이 졸던 모친이 그곳에서는 안 주무셨고, 또 물리치료실에서 안마까지 받았다며 싱글벙글하시는데 그곳이 과거 수년간 다녔던, 마포 노래교실처럼 즐거운 곳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모친이 좋아하는 흘러간 옛 노래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혹은 최병걸의 노래 "진정 난 몰랐었네!"를 흥얼거리지 않을까!

 

"발길을 돌리려고 바람 부는 대로 걸어도

돌아서지 않은 것은 미련인가 아쉬움인가

가슴에 이 가슴에 심어준 그 사랑이

이다지도 깊은 줄은 난 정말 몰랐었네

아~~ 아~~ 진정 난 몰랐었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작가의 이전글 나와 모친의 건강관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