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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4. 2021

작곡가 이수인 선생을 추모하며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작곡가 이수인, 별)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교시절, 가을 해가 저문 늦은 밤 내가 광화문에 있는 S교회 도서관을 나왔을 때 대학부 성가 연습실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던 노래였다.


너무나도 서정적인 노래에 감동해 가던 발길을 멈췄고, 이 시간에 누가 이렇게 멋지게 노래를 부를까?  또 이 노래의 제목은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다.


나중에 이 노래가 가곡 '별'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후에 나의 애창곡이 되어 노래 가사처럼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노래했고, 군대 시절에도 OP,  GP 철책 너머 칠흑같이 어두운 북녘땅을 바라보며 작은 톤으로 노래 불렀다.


나는 노래를 좋아하고, 특히 한국가곡에 매료되어 한때는 성악가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용돈을 모아 매년 봄, 가을이면 '한국가곡의 밤' 공연을 보러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 등에 가는 것이 나의 사치였다.


그 후 테너 김화용 선생이 부른 가곡 '석굴암'을 들었는데, 토함산에 올라 석굴암으로 가는 과정과 느낌을 구성지게 표현한 가사도 좋았지만 거기에 아주 절묘하게 어울리는 음률에 반해서 누가 이 노래를 작곡했는지 궁금했다.


확인해 보니, 그분은 내가 가곡을 좋아하게 된  '별' 등 서정적인 가곡 150여 곡과 "앞으로 앞으로, 둥글게 둥글게" 등 수많은 주옥같은 동요 500여 곡을 작곡한 이수인 선생이었다.


그분의 대표 가곡 중 하나인 '고향의 노래'는 친구이자 시인인 김재호 교사가 엽서에 적어 보낸 글에 곡을 붙어 발표한 노래로 유명한데, 추운 겨울에 찻집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남성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오래전에 ROTC 임관 30주년 행사 때 군동기가 불러 주목받은 '내 맘의 강물'은 웬만한 성악가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유명한데 선생은 성악가 중에서 테너 팽재유가 제일 잘 부른다고 말씀하신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공연장에서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최영섭 선생, '얼굴'을 작곡한 신귀복 선생을 만나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은 있지만, 나의 우상이었던 이수인 선생과는 그런 인연이 없었다.


나는 팬이 되어 한국가곡 축하마당 등 공연이 있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먼발치에서 그분을 보았고, 어느 해인가 성산 살롱 음악회 때 그분의 마포 성산동 자택을 방문할 기회도 있었지만 놓쳐 아쉬웠다.


방황하던 나의 학창 시절을 음악으로 올곧게, 풍요롭게 만드신 이수인 선생이 얼마 전에 82세로 하늘나라에 가셨다.


귀로 듣던 한국가곡을 입으로 부르는 노래로 만들며 열심히 뛰셨던,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얼굴, 그리고 마음씨 좋은 시골 아저씨 같은 이수인 선생님이 보고 싶다.


그런, 선생님이


'고향의 노래' 가사처럼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같이 북녘을 날아가셨지만",


'내 맘의 강물'이 되었으며,


지금은 '별'이 되어 밤하늘을 영롱하게 비추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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