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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4. 2021

동구릉 산책


"여기가 어디라고? "

"동구릉이에요!  혹시 서오릉은 아시지요?"

"응! 들어봤어!"

"서오릉은 서쪽에 있는 5개의 왕릉이고, 여기 동구릉은 동쪽에 있는 9개의 왕릉이라는 뜻이에요!"

"그래!  그런 거야!"

"사람이 없어 조용하고, 나무가 많아 정말 좋구나!"


집에서 무료하게 TV를 보거나, 낮잠을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나는 답답할까 봐 일주일에 한두 번 모친을 휠체어에 태워 동네 마트에 가거나, 한강공원을 산책하며 바깥바람을 쐬고 있다.


또 남동생과 격주로 모친을 모시고 그동안 마포 한강공원, 롯데타워와 석촌호수, 서울숲 공원을 갔고, 오늘은 우리나라 최대의 왕릉인 동구릉에 다녀왔다.


어제 비가 와서 축축한 흙길에 휠체어를 미는 것이 힘들었지만, 한적한 일요일 아침에 모친과 얘기하며 산보하니 싱그러운 풀과 나무가 우리를 반기는 것 같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따뜻한 눈인사를 보여주었다.


오래전에 처음 선정릉에 갔을 때 나는 "서울 한복판에 이런 멋진 능이 있다니!" 하면서 놀랐고, 그 분위기에 반해 얼마 후에 선릉역 인근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그리고 꽃피는 봄이나,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에 이른 점심을 한 후에 직원들과 그곳을 걸었고, 또 무더운 여름에는 친구들과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그늘진 벤치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며 담소했다.


그런 선정릉의 추억이 아스라이 잊어져가고 있지만, 내 주변에는 석촌호수, 올림픽공원 그리고 잠실 한강공원 등이 있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이곳 동구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고, 규모도 선정릉에 비해 엄청 크고 넓으며, 수백 년에 걸쳐 자연스럽게 잘 보존되어 산책하기에 최상의 코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유모차에 탄 아기를 본 모친은 살짝 동병상련을 느끼며, "나는 이제야 처음 동구릉에 왔는데, 저 아기는 출세했구나!" 하며 웃으셨다.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 앞에서 멀리 제실, 행랑채 그리고 잘 조성된 봉분을 멀리 쳐다보며 모친께 왕릉의 구조를 설명드렸고, 또 조선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을 올려보며 봉분에 왜 억새가 피어있는지, 그의 이복동생이자 우리 조상인 의안대군(이화)과의 관계와 업적을 얘기하니 머리를 끄덕이셨다.


달 전에 뇌경색이 발생해 인지기능이 악화된 모친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대화를 많이 해서 그런지 정상인 같았고, 겉으로 봐서는 과체중에 관절염을 앓고 있어 휠체어를 타고 있는 노인이었다.


어제 카톡에서 읽은 "걷지 못하는 삶은 의미가 없다"를 언급하며 모친께 운동삼아 휠체어를 끌고 가시라고 하였다.


지난번 서울숲 공원에 이어, 오늘도 모친은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나는 아름다운 숲길을 1km 정도 걸었고, 모처럼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자연을 온몸으로 만끽하셨다.


멀리 동구릉까지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모친은 별내 카페거리에서 점심을 사셨다.


그런데 다음 산책코스는 어디로 할까?


"선정릉이 집에서 가깝고 좋은데 그곳은 계단이 있어 휠체어가 못 가네. 그렇다면 한 바퀴를 돌아도 1km가 안되는데 걷자고 할까!  그때는 엄마를 가운데 두고 동생과 셋이서 나란히 손잡고 걸어볼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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