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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6. 2021

나의 ROTC 후보생 시절

부끄럽지만, 지나간 학창 시절 그리고 40여 년 전  ROTC 후보생 시절 얘기를 꺼내본다.

중학 때는 키가 작아 맨 앞줄에 앉았고, 체력도 좋지 않아  중3 때 남들은 고입 시험을 공부할 때 나는 방과 후에 남아서 운동장을 돌면서 근력운동을 키웠다.


또 고3 대학입시 체육은 누구나 당연히 만점을 받는 점수 밭이었지만, 나는 기본점수만을 받아 대학에 들어갔다.


더구나 나는 알아주는 몸치여서 그 당시 유행하던 춤도 제대로 따라한 적이 없었고, 선천적으로 운동신경까지 둔해서 지금까지 잘할 수 있는 운동이 없어 남들 다하는 당구와 골프도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내가 ROTC 장교가 되려고 한 것은 조선의 개국공신 의안대군의 후손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집안에 어느 누구도 장교 출신이 없어 이 참에 한번 해보리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대학 2학년 때 ROTC 후보생에 지원했을 때 조상을 잘 둔 덕분인지 사상검열은 쉽게 통과하였고, 학교 성적도 좋아 서류는 큰 문제없이 합격하였다.


그런데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고혈압은 후보생 시절부터 한 번에 제대로 통과되는 적이 없었고, 매번 허용치를 오버하여 임관 때까지 수 차례나 재검을 받은 골칫거리였다.


그다음에는 장차 초급장교가 되는 후보생으로서 기본이 되는 체력검사는 왕복 달리기, 턱걸이, 윗몸일으키기, 수류탄 던지기 등 10가지가 있었다.


웬만한 검사는 간당간당하게 점수를 받으며 통과하였으나, 2000미터 장거리 달리기는 나에게 아킬레스건이었다.


그 당시 나는 재수 없게 (?) 체육학과 출신 20여 명과 함께 250미터 둘레의 운동장을 8바퀴 돌았는데, 운동 체질인 그들은 출발 신호가 울리자마자 치타같이 재빨리 뛰쳐나가며 나보다 한 발 앞서기 시작했다.


아무튼 나는 그들과  거의 동시에 골인지점에 들어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한 바퀴를 덜 돌았고, 점검관이 20여 명의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유심히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후보 생때는 제식훈련, 태권도, 유격 등 몸으로 평가하는 과목이 많았는데, 나는 남다른 몸치여서 힘들었다.


특히 총검술은 왜 이리 어려운지 교관이 하나하나 시범을 보이면 그때는 알 것 같았으나, 막상 내가 해보면 엉성하였다.


100명 남짓 동기들 앞에서 한 사람씩 나와서 총검술 시험을 보았는데, 어떤 친구는 숙달된 조교 인양 각도와 힘이 넘쳐 멋져 보이는데, 나의 총검술 자세를 쭉 지켜보던 교관이 나에게 한 말이 가관이었다.


춤을 춰라! 춤을 춰!


아무튼 나는 2년간의 후보생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포병 소위로 임관하였고, 판문점이 있는 천하 제1 사단에서 관측장교, 화력통제장교로 근무하였다.


2년 4개월간 초급장교로서 OP근무, 최전방 GP 근무 그리고 200명이 넘는 사병을 통솔하며 군대 영화 촬영을 하는 등 멋진 추억을 남기고 중위로 예편하였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과거였지만, 그 시절이 무척 그립고, 내가 ROTC 장교 출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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