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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6. 2021

노인이 되면 가끔 이런 일이


미국 시카고에 사는 고종사촌 큰 형님 부부가 오랜만에 방한하셨다.


언젠가 소개했던 대로 형님의 큰딸은 미국 시카고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클린턴 대통령과도 기념사진을 찍은 재원인데, 의사인 남편과 3자녀와 함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에베레스트가 있는 네팔 오지에서 수 년째 의료선교를 하고 있다.


이번에 나는 서울시내를 돌았던 7년 전의 코스와는 다르게 인근 교외로 드라이브하는 겨울여행 계획을 세웠다.


이번 당일여행은 모친과 15여 년 전에 사별하신, 올해 팔순이신 고모님도 초청하여 차 한 대로 가기로 했다.


나는 분당에 머물고 있는 형님 부부의 편의를 위해 잠실역 8번 출구에서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하고, 확인을 위해 문자를 또 보내드렸다.


드디어 당일 날 아침, 일찍 나오시는 분을 고려해서 9시 50분  잠실역 8번 출구에서 70미터 거리에 있는 골목에 차를 세워놓고 기다렸다.


그때 모친은 잠실나루 역을 방금 지났다며 전화하셨고, 형님 부부는 분당 서현역에서 출발했는데 지하철을 잘못 타서 조금 늦는다고 하셨다.


매일 30분 이상 통화하는 모친과 고모님은 친자매 같이 서로 잘 알고 있어, 모친은 고모가 약속은 철저히 지켜 최소 20분 전에는 도착했을 텐데 하면서  확인해보라고 말씀하였다.


내가 고모님께 전화드리니 모친과 함께 가려고 8번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잠실역에 도착하신 모친은 암만 찾아봐도 8번 출구에는 고모가 없다고 하셨다.


잠실역은 워낙 사람이 많고 복잡한 곳이라지만, 8번 출구는 한 곳이라 금방 확인할 수 있는데 이상했다.


그 사이, 늦는다던 형님 부부는 10시 20분에 도착하셨고, 모친도 뚱뚱한 몸을 이끌고 주차했던 곳으로 오셨다.


사리가 분명하고, 날씬하며, 젊은이처럼 밤늦도록 카톡을 즐기는 고모님이 잠실역 8번 출구를 모르신다니 분명히 다른 곳에 계신 것 같았다.


전화로 다시 확인해보니, 8번 출구 주변의 모습이 달랐고, 다른 사람과 통화하여 확인한 곳은 잠실역이 아니고, 잠실 새내 역(구 신천역)이었다.


즉시 차를 몰아 잠실 새내 역을 가보니,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8번 출구 바깥에서 혼자서 무려 50분 이상 기다리며 떨고 계셨던 것이다.


교회 권사이신 고모님은 집과 교회만 쳇바퀴 돌듯 맴맴 돌아 이곳 잠실은 모르는데, 누가 잘못 알려준 것 같다고 하셨다.


분명히 잠실 새내 역이라고 쓰여있는데, 고모님은 그것이 그냥 똑같은 잠실역인 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유추해 보니, 팔순 노인이 잠실역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누군가 건성으로 잘못 알려준 것 같아 몹시 씁쓸하다.


수년 전에 고모님이 웃으면서 얘기하신 것이 지금도 생각난다.


'길거리에서 어떤 자료를 다들 나눠주는데, 나만 빼더라!


내가 비록 노인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한데  안 줘서  섭섭했어!'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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