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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7. 2021

곤드레밥


 

어제 전 직장 동료 L과 청계산에서 커피공방을 하는 직장 후배 K를 만나 커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밖을 나오니 컴컴했고,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을 가리켜 저녁식사를 하러 아까 지나온 대왕저수지 앞에 있는 만두전골집으로 향했다.

 

과거 그곳은 곤드레나물 집으로 유명해 몇 번 갔는데, 최근에 만두전골집으로 바뀌어 이 참에 가보려고 했다.

 

그런데 주차장이 많이 비어, L과 나는 같은 동네에 살아 잠실 석촌호수 앞에 있는 곤드레나물 집으로 차를 몰았다.

 

나는 미식가는 아니다.

 

내 아내는 TV에서 맛집이 나오면 다음 날 혼자 찾아가는 억척을 부렸고, 멀리 시외로 나가거나 하루 이틀 숙박이라도 하면 인터넷을 뒤져 그곳의 유명한 맛집을 찾는 것이 우리 여행 목적 중의 하나였다.

 

한 번은 천안에 000 꽈배기가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고속도로를 나와 30분을 헤매다가 재래시장에 들러 2만 원어치를 사기도 했다.

 

만일 가야 할 지역 맛집을 그냥 지나치는 날이면 결코 즐거운 여행이 아니었고, 언제 그곳에 다시 갈 것인지 채근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길게 줄 서느라 엄동설한에 노상에서 30분 덜덜 떨다가 들어간 군산 00 짬뽕집 등은 홍보와 달라 실망한 뒤로는 내 얘기도 존중해서 둘 다 입맛에 맞는 숨은 맛집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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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안준수 보리밥집은 시래기밥도 같이 하는데 지난주 가족과 곤드레밥을 먹었고, 나는 1주일 만에 또 왔다.

 

그때 나물과 고등어찜이 집에서 만든 것보다 더 맛있었고, 곤드레밥에 강된장을 비벼 넣고 된장국을 살짝 뿌려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서울 도봉구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친구가 멀리 경기도 포천까지 막국수를 먹으러 가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마치 소가 되새김질하듯 곤드레나물밥과 밑반찬인 각종 나물무침의 환상적인 조합을 온몸으로 느끼며 미식가 인양 천천히 먹었다.

 

우리 둘은 곤드레나물을 넣은 누룽지탕까지 완벽하게 비워 설거지 하기 쉽게 식탁 위를 깨끗이 정리하였다.

 

홈런왕 이승엽 선수가 종종 가는 동탄 곤드레밥집, 가수 강진의 단골 팔당 고가네 곤드레밥집 등 죄다 가봤지만, 나는 가성비와 접근성이 우수한 이곳이 좋아 자주 찾는다.

 

나는 술을 못해 신입사원 시절을 몇 번을 제외하고 취한 적이 없어 곤드레 되지 않았지만, 이 음식을 먹으면 나물의 맛과 향에 취해 곤드레만드레 된다.

 

그런데 새순이 올라와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마치 술에 취한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나온 ‘곤드레’라고 하는 낱말이 최근에 와서 잘 생각나지 않아 어제도 곤욕을 치렀다.

 

그래서 인기 미남가수가 누군지부터 시작해서 박현빈이 나오고, 그가 부른 '곤드레만드레'까지 떠오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려 곤드레나물밥 먹기가 결코 쉽지 않다.

 

주요 재료인 곤드레나물이 바로 고려엉겅퀴의 다른 이름이고, 피를 멈추고 엉키게 한다고 해서 엉겅퀴라고 하는데 그만큼 약효가 뛰어나다고 한다.

 

친구 L은 헤어지면서 좋은 곳 소개해줘 고맙다며, 집에서 가깝고 맛있어 조만간 가족과 함께 오겠다고 하였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식객인 내가 이곳 곤드레나물 집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마치 미식가 인양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다.

 

글쓴이 서치펌 대표 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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