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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Oct 03. 2021

스무 살 아줌마

스무 살 아줌마

"이렇게 만날 수 있어 정말 기분이 좋구나!"


전혀 예상하지 않았는데, 수년 만에 이종사촌 여동생(A, B)들을 한꺼번에 만났을 때 모친이 하신 말씀이다.


나보다 3살 위인 A를 우리 3남매학창 시절부터 이모(아줌마)라고 불렀는데, 4년간 우리 집에 기거하며 남대문시장에서 옷가게를 하신 모친을 도왔다.


그런 인연으로 모친의 소개로 착하고 성실한 동갑 남자를 만나 딸 셋을 낳으며 재미있게 살았지만, 6년 전에 남편이 뇌종양으로 사망하여 지금은 용인 수지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예쁘고, 성격도 좋은 딸들이 모두 결혼해 아기를 낳았고, 둘째는 잠실엘스아파트 32평에 산다며 웃으며 살짝 자식 자랑도 했다.


나의 외할머니는 12명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비교적 넉넉하게 사셨는데, A의 모친인 여동생이 시집을 잘못 가서 불쌍하다며 늘 가슴 아파하셨다.


모친은 지금도 외가댁  얘기를 할 때마다 어렸을 적에 이모 댁에 가서 본 느낌을 늘 나에게 전하여 외할머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워낙 가난한 집안이라, 이모가 저녁으로 죽을 쑤고 있는데 그때 아랫마을에 사시는 시부가 오셔서 죽에 물을 넣었고, 조금 있으니 시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와 물을 더 넣어 양을 늘려 죽을 쑤시는 것을 모친이 직접 보셨다는 것이다.


인기가수 진성의 히트곡 '보릿고개 ' 노래가 생각난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이는 불과 70~80년 전 일이다.


그 후 조금은 형편이 나아졌겠지만, 그래도 어렵게 살아왔을 이모 A와 B를 오랜만에 만났으니, 친척도 별로 없는 모친이 감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은 이번 만남은 우연의 결과였다.


남동생이 추석 때 부친께 인사드리지 못했다며 모친과 여주 공원(납골당)에 갔고, 나는 그 사이에 양평 개군면에 있는 친구의 농장에 놀러 갔다가 차로 30분 거리에서 모친과 늦은 점심을 하고 있던 동생에게 몰래 연락해 모친을 서프라이즈 했던 것이다.


모친은 내가 여주까지 온 것을 반겼고, 나는 바쁜 동생을 대신해 모친을 모시고 집에 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멀리 왔는데 그냥 귀가하기가 아쉬워, 용인 수지에 사는 이모 A가 불쑥 생각나서 전화하여 만난 것이다.


나보다 2살 아래라 나를 조카님이라 부르는 B도 함께 왔는데, 그녀는 씩씩한 성격답게 큰딸을 탁구선수로 키워 세계 탁구 선수권에도 출전했다고 하였다.


이번에 처음 듣는 얘기지만, 모친의 이모는 9남매를 두셨는데 그중 3명은 어릴 때 병으로 죽어 지금  B가 졸지에 막내가 되었다.


자기 동네에 왔다며, 유명한 수원 갈빗집에서 저녁식사를 맛있게 한 후에 우리는 헤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모 A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렇지 않아도 언니가 뇌경색이라 한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오늘 정말 잘 왔고, 즐거운 시간이었어!  고마워!"


오래전 보릿고개 시절은 아니었지만, 방학 때마다 놀러 갔던, 내 어릴 적의 외가댁(수지 풍덕천) 시골생활도 그다지 풍요롭지 못했다.


그러니 가난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쳐 우리 집에서 한동안 생활했던, 그 시절 나이 어린 이모 A를 생각하니 코끝이 찡하다.


"설악산에 단풍이 드니 드디어 가을이 왔나 보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데, 옛 기억을 떠올리니 마음이 울적하네! "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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