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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26. 2021

아직도 우리는 청춘

아직도 우리는 청춘

"어느덧 소중한 인연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맞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편이 아닌 세상을 탓하며 지나온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중략)


친구들 모두 현재의 상황에 굴하지 않고 즐거운 일상 속에 소망을 가득 담는 한가위 명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소중한 우정 더욱 다져가는 우리들이 되도록 합시다. 여러분들이 있어 고맙습니다~~^^"


몇 년째 집에서 쉬고 있는 친구 S가 추석 이틀 전에 단체 카톡에 올린 글이 의미심장하다며 친구 L이 나에게 연락이 왔고, 이 기회에 추석이 끝나는 대로 얼굴 한번 보자고 해서 오랜만에 만난 곳이 낙산공원이었다.


우리는 오전 11시 혜화역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나 S에게 물어보니 "그냥 추석인사이며, 큰 의미는 없다" 고 하며 해바라기 같은 함박웃음을 보였다.


S덕분에 이렇게 50년 가까이 막역한 친구 5명이 모처럼 젊은이의 거리인 혜화동을 걸을 수 있어 좋다며, 나는 동물원이 부른 노래 '혜화동'부터 나의 모교인 K고교까지 언급하여 길을 앞장섰다.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 동소문(혜화문) 건너편 낙산공원 계단을 오르며 멀리 북악산과 북한산이 보이자 '와!' 친구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고풍스러운 성곽을 따라 핀 이름 모를 꽃을 바라보며 새삼 가을을 느꼈고,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개인 혹은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겼다.


살짝 숨이 찰 정도로 비탈지고 구부러진 성곽길도 그림같이 멋있지만, 낙산공원 정상에 올라 360도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는 풍경은 코로나 때문에 집콕하여 답답한 우리 가슴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안산, 인왕산을 바라보며 갖고 온 과일과 강정을 먹었고, 낙산을 처음 일주한다는 한 친구는 서울에 이런 멋진 곳이 있다며 감격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화 벽화마을에서도 우리는 20~30대 젊은이처럼 아기자기한 카페를 기웃거렸고, 방송을 탄 유명 카페 앞에서는 허리에 손을 얹고 온갖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래! 청춘이 따로 있나? 생각이 젊으니 우리가 바로 청춘 아닌가!"


성곽을 따라 내려오니 탁 트인 풀밭이 나왔고, 마치 우주선같이 생긴 동대문 DDP와 번잡한 시내를 내려다보니, 분위기 있고 낭만적이었던 지금까지와는 딴 세상이었다.


다소 늦은 점심은 이국적인 동대문 러시아 거리에 있는 사마리칸트 식당에서 해결했다.


김태희, 장동건같이 잘 생긴 직원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양고기 꼬치, 만두, 수프 등 우즈베키스탄의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맛보았고, 과거 해외출장과 여행을 다니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꺼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인근에 있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특이한 멜론빙수를 먹으며 얘기를 나눴고, 10월에 원주 Y대학에 근무 중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오래 앉아 엉덩이가 아파,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이었다.


"그냥 갈 수 없잖아 하던 말이 남았는데

그냥 갈 수 없잖아 마음도 가져가야지~~"


헤어지기 섭섭하다며 간단하게 생맥주 한잔하자는 얘기가 나와, 한때 유행했던 바니걸스의 노래를 읊조리며 광화문통 아이들 5명 모두 을지로 3가 노가리 골목으로 향했다.


우리들 대부분 처음 노가리 골목에 갔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저녁 6시인데도 그곳은 청춘들로 넘쳤고, 마음만 청춘인 우리는 낄 자리가 없었다.


"와우!  지금 확진자가 2천 명을 넘나드는 코로나 시국인데, 이곳은 별천지네!"


모두 백신 2차까지 맞은 우리들이지만 생기가 넘치고, 오픈된 공간이 좋아, 비교적 손님이 적은 곳으로 들어가 생맥주와 골뱅이무침을 시켰다.


상사를 안주 삼으며 마셨던 직장생활 시절을 떠올리며 잔을 부딪쳤고, 접시에 골뱅이는 보이지 않고 파무침만 있을 즈음 불거진 얼굴을 서로 확인한 후에 일어섰다.


그때 한 친구가 인근에 을지면옥이 있다며 저녁으로 냉면을 먹자고 해서, 우리는 나온 술배를 두드리며 배나 꺼진 후에 가자고 하였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청계천이었다.


야간에 친구들과 어깨동무하듯이 바짝 붙어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걸으니 동심이 따로 없었다.


"시냇물은 졸졸졸졸 고기들은 왔다 갔다~"  그곳에서는 동요가 어울렸고, 또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 가곡이라도 가볍게 부르면 제격일 것 같았다.


서울 한복판인데도 조용했고, 조명에 비친 모습이 운치 있었으며, 물가에 잠시 앉아 신발을 벗고 아이들처럼 물장난을 치고 싶었다.


20여분 걸었을까 동대문 평화시장이 나왔고,

"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여울져 가는 저 세월 속에 ~"


가수 나미의 '빙글빙글' 가사처럼


우리는 을지로 3가 원점으로 되돌아가 을지면옥에서 냉면과 수육으로 시원하게 마무리한 후에 헤어졌다.


평소 만보는커녕 5천 보도 걷지 못했을 친구들이 2만 보 이상 걸어 건강을 지켰고, 집을 떠나 무려 반나절 함께 하며 우정을 다졌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친구 S가 헤어질 때 했던 말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규선아!  다음에는 더 의미 있는 센 글을 올려볼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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