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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20. 2021

우리는 낀세대


"그래 커피 한잔 하자!  봐 둔 좋은 곳이 있다."


어제 모처럼 그를 지하철역에서 만났는데, 그는 바지 양쪽 주머니에서 차가운 캔커피를 꺼냈고, 그를 따라간 곳은 그가 사는 아파트 내 인공적으로 잘 조성된 정원이었다.


나는 봐 둔 곳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그와 가끔 만났던 P상가 앞 노천카페를 떠올리며 "그곳 외에 다른 멋진 카페가 새로 생겼나 보네." 하며 궁금했던 참이었다.


나무가 제법 우거져 마치 작은 숲 속에 와있는 듯한 그곳은 신기하게도 방금 만난 번잡한 지역과는 달리 소음까지 차단된 듯 조용했고, 그는 코로나때문에 사람 많은 곳을 피해 일부러 이곳에 왔다며 만면에 하회탈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아담한 벤치에 앉아 그가 인근 홈플러스에서 사 왔을 단돈 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부모부터 아이들 근황까지 순서에 따라 대화를 이어갔다.


얼마 전에 그의 부친이 돌아가신 후에, 그는 심사숙고 끝에 모친(91세)을 요양원에 모셨는데, 코로나가 더 극성이라 면회가 안되어 안타깝다고 하였다.


이어서 내가 뇌경색을 앓고 있는 모친을 두 달 넘게 집에 모시고 있다고 하니 금시초문이라며 귀를 기울였고, 거동이 불편한 자기 모친과 달리 아직도 걸을 수 있어 다행이라며 위로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다른 친구(A) 얘기를 꺼냈다.


모친을 오랫동안 모신 형이 더 이상 형편이 안되어 동생(A)에게 부탁하자, 할 수 없이 분당과 멀리 일산(모친)을 오가며 돌보고 있다며, 이는 우리가 직면한 슬픈 현실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1970년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60세도 안되게 삶이 짧았는데, 그 후에 의학이 발달하여 내 주변을 살펴보면 대부분 80세 넘게 사셨고, 90세라도 아직도 정정하신 분이 제법 많다.


그런데 옛날 같으면 그리 신경 쓰지 않을 일이 요즘에 와서 평균수명이 확연히 늘면서 만일 부모님이 병중이라면 옆에서 수발해야 하는데, 이는 어느 심성 좋은 착한 자식이라도 감당할 수 없는 정말 힘든 일이 되었다.


대학 친구는 부모 모두 10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어, 과거 같으면 환갑이 지나 대접받아야 할 노후 생활은커녕, 어디 편히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하기도 힘들다며 하소연하였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친구는 우리가 건강해야 하고, 혹시 중병이라도 걸리면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더 이상 연명하지 말고 조용히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에 혼자 양수리까지 자전거 여행을 하며 건강을 다지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아이들 직장과 결혼, 주택문제, 그리고 우리의 노후 얘기까지 들먹이다 보니 한 시간 반이 훌떡 지났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작은 키에 단단한 체격을 가진 그는 나를 올려다보며, "키가 많이 컸네! 이발하고 염색해서 젊어 보이네!  이마가 주름진 나에게 형이라 불러!" 라며 늘 그랬듯이 실없는 농담을 던진 후에 떠났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낀 세대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힘들게 살아오신 것을 쭉 지켜보았고, 한때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식들에게 바라지 않고 눈치를 보는 세대가 되었다.


내일이면, 추석이다.


예전 같으면 온 가족이 모여 밤을 까고,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며 요란할 텐데 TV에서 씨름 경기하는 소리만이 온 집안을 휘돈다.


소파에서 TV를 보시던 모친이 창가에 앉아 쪼끄만 휴대폰을 갖고 노는 나에게 돈을 주시며 송편을 사 오라고 하신다.


"엄마! 항상 건강하셔서 감사합니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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