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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Oct 06. 2021

우리 집 어린이날

지난 어린이날 나는 아들의 축구경기를 응원하였다.

아들이 다니는 잠동초교는 학년마다 축구부가 있고, 코치가 몇몇 학교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연습을 하는데, 매년 어린이날은 인근 코치들끼리 운영하는 학교와 시합을 하였다. 재작년에는 아주 초교, 작년에는 한양공고(인조잔디 축구장), 올해는 백문초교(구리시)에서 했다.

아침 8시 반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각 가족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후 도착지를 확인하고 구리로 출발하려는데, 아들 녀석이 다른 차에 타는 바람에 아들 친구들 3명을 태우고 백문초교로 갔다. 가는 도중에 누가 누군지 알기 위해 각각의 이름을 외우며, 내 직업상 “아빠는 뭣 하시니? “하고 슬쩍 물어보았다. 나는 내 아들이 늦둥이라 그 얘들 아빠는 나보다 어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놀랍게도 그들 모두 유명 대기업 사장, 중견기업 공장장, 그리고 개인사업(자기 빌딩 소유)을 한다고 하며,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모두 어렵다고 하는데, “젊은 친구들이 실력도 좋구나” 하며 나는 씁쓸한 감정을 삭혔다.

오전에 아들은 구리팀과 경기할 때 후반전 선수로 뛰었다. 전반전에는 비기다가, 아들이 들어간 후반전에는 2:0으로 지니, 우리 코치가 3 쿼터(전, 후, 종반)로 하자고 제안하여, 종반전에는 실력 있는 다른 선수를 넣어 2:2로 비겼다.

점심은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과 회비로 마련한 돼지불고기로 등나무 밑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바람이 너무 불어 상추, 김 등이 날아가지 못하게 손으로 막는 것이 흠이었지만, 모처럼 야외에서 먹으니 꿀맛 같아 나를 포함한 몇 아빠들은 2그릇씩이나 게 눈 감추었다.

오후에는 모인 가족 중에서 차출된 엄마 선수들끼리 경기를 20분간 했는데, 그 넓은 운동장에 선수들이 축구공 주위로 몰려다녀 마치 책받침 위에 있는 쇳가루를 자석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후 열린 아빠 선수들의 경기(30분)는 우리 팀에서 선수 1명이 들어가자마자 발이 삐어 절룩거리며 퇴장했고, 이에 다른 선수를 투입했으나 실력 차이가 나서 졌다. 우리 선수 중에 골키퍼를 본 나이가 들어 보이는 키 큰 아빠(50세 정도, 185cm)가 선방하지 못했다면 5:0 이상은 되었으리라! 그들 구리 아빠 선수들은 조기축구회원들이 상당수 있는 것 같았다. ㅎㅎ

이윽고 아들(서울팀)이 다시 뛴 경기는 결국 구리팀에 2:1로 졌다. 구리팀 선수 대부분은 키가 작으며 얼굴이 새까맣지만, 달리기도 잘하고 발기술도 좋아, 1~2명의 실력 있고 키가 큰 선수들에 의지하는 서울 팀보다 훨씬 우수해 보였다. 그들 중 머리가 긴 꼬마 녀석은 하도 재빠르고 기술도 뛰어나서, 그에게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골을 넣고는 마치 국가대표선수 양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하는 흉내를 내어 좌중을 모두 웃겼다.

나는 속으로 “구리팀은 공부는 안 하고 축구만 하나?” 할 정도로 그들은 조직적이고 실력이 있어 이번까지 우리 서울팀에게 3 연속 승리를 하였다.

아들 녀석은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경기를 할 때는, “1~2골을 넣었다”라고 하여 나는 무척 기대를 했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실력차가 나고, 땅도 거칠어서 몸을 사리는지, 태클도 없고 주로 패스만 하여 공격적이지 못했다. 그래도 서울팀 선수 중에 중간 정도는 하는 것 같아 기특했다.

오후 5시경 모든 경기를 마친 후 나의 형색을 보니 가관이었다. 하루 종일 바람 불고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있어서, 머리는 산발이고 옷은 엉망이 되었다.

집에 들어와 아들과 뜨끈한 물을 틀어 놓고 목욕했다.


어버이날(5월 8일)인 오늘 아들에게서 예쁜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과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 속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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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사랑해요!
아빠와 같이 자전거 타고, 목욕하는 것이 제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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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은 이 맛을 아니?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2004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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