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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Oct 06. 2021

별난 사람

엊그제 일이다. 세상에는 별난 사람도 많고, 나는 그 별난 사람을 꽤 많이 만나고 있다.

요즈음 나는 세계적인 외국투자기업(A)의 임원 후보자를 채용 중에 있다. 많은 후보자 중 국내 굴지의 유명 대기업에서 선임 수출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회사 내 경력도 화려한, 한 후보자(B)가 이메일을 보내왔고, 몇 시간 후 근엄한 목소리로 “그 내용을 읽어 보았냐?”라고 전화까지 왔다.


는 하루에 최소 50여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의사를 타진하곤 하는데 일일이 전화로 대응하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그런 그가 요 며칠 사이에 2~3차례 전화로 채용 중인 회사가 “어떤 회사이고, 규모는, 직원수는?” 하면서 물어 왔다. 헤드헌팅 업의 생리를 잘 알겠지만, 경우에 따라 채용 회사 사정상 비밀리에 진행될 경우, 우리는 이력서 등 후보자의 서류를 입수하여 신원을 확인한 후, 그에게 우리와 면접 시 회사 규모, 채용하려는 이유 등을 얘기하고, 또한 후보자의 경력 등을 여러 각도로 인터뷰를 한다.

그런 그가 드디어 우리 회사로 왔다. 실제 나이는 45세이지만, 55살이 훨씬 넘어 보이는 주름진 얼굴이라 밝아 보이지 않아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그룹 회장상을 2번씩이나 타고 특진도 몇 차례 한 실력자이나, 중역 진급에 몇 년째 누락되어 “어디 좋은 회사가 없는가?” 하고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그는 따지는듯한 말투, 두리번거리며 남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은 며칠 전 전화를 받았을 때의 그 느낌 그대로였다. 누가 누구를 인터뷰하는지 도무지 모를 지경이었다. 더구나 우리를 통해 A사에 취업하려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고압적이었다.

나는 수많은 헤드헌터 중에 인기순위 1위(동아일보 기사, 2004년 8월)를 달리고 있지만, 그런 행동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그동안 무조건 군대식으로 밀어붙여 회사 내에서 인정받았는지 모르지만, 요즈음 그런 친구들은 구시대 인물로서 A 같은 외국투자기업에는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나는 면접을 하면서 채용조건에 맞는 후보자라고 생각되면, 그의 인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뢰성이 있는지, 성격은 원만한지, 남을 배려하는지, 그리고 예의가 바른 지” 등에 대해 평가한다. 회사라는 조직사회는 친화력이 무척 중요하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선배로서, 인사 컨설턴트로서 그에게 한마디 했다. “그 좋던 시절은 지났고, 사오정에 접어들어 만일 좋은 자리가 없으면 어디 구멍가게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그것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될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속이 후련했다.
나는 어떻게 그가 그렇게 화려한 경력을 가졌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러고 나니 그도 조금은 언행에 조심하는 눈치였다. 느릿한 말투는 그대로이나, 내가 자기 나이보다 많은 것을 알아채고는 “내가” 가 “제가” 로 바뀌었고, 자기는 이런저런 장점이 있다며 잘 평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인터뷰한 후보자 중에 우수한 인재만을 평가해 리포트하면, 채용 회사는 그중에 소수의 후보자를 선택하고, 그 후보자가 채용 회사에서 면접을 치른다. 우리는 그동안 우수한 인재를 추천해 주었고, A사는 우리를 인정했던 것이다.

B는 해외지점에서 근무했지만 영어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인성이 특히 문제였다. MBA 출신으로 영어가 유창한, 다정다감한 다른 후보자들과 달라 확실히 실력 차이가 났다. 다만 굴지의 대기업 출신이라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아 몸을 낮춰 경쟁력을 높이는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B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언제쯤 A사에서 실제 면접을 보느냐? 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은데 김칫국부터 먹고 있는 꼴이란!”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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