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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탐라국을 여행하다

여기가 어디인가!


맑고 푸른하늘, 후덥지근한 날씨, 울창한 숲, 눈에 띄는 키큰 야자수 등이 있어 확실히 이국적인 제주도다.


주변에 한글간판이 없다면, 여느 동남아국가나 미국 LA라고 해도 믿을만한 제주도를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한 것은 무려 20년만이었다.


그동안 부부동반으로 2~3년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몇차례 그곳에 갔지만, 아직 미혼인 큰애와의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하여 한달 전에 항공편, 숙소와 렌터카를 예약하였다..


오랜만에 국내선을 이용해서 그런지 예전과 확연히 다른 예약시스템(모바일탑승권)을 보고 놀랐는데, 함께 예약한 렌터카까지 모든 절차가 순식간에 처리되는 것을 보고 더욱 감동하였다.


2박3일의 짧은 여행이라 제주도 남쪽인 서귀포지역을 중심으로 계획했는데, 우리부부는 오름과 올레길을, 아이들은 식당과 카페를 중심으로 조사하며 일정을 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귀포날씨는 "돌풍과 집중호우가 예보된다"고 하여 그냥 리조트에 머물다 가겠구나 생각해서, 따로 책 그리고 윷과 화투도 준비하였다.


첫날은 예상대로 쾌청했다.


1100고지 휴게소에 들려 인근 람샤르습지에 갔을 때 봤던 커다란 뭉게구름은 내가 어릴 때 개울에서 멱을 감다가 보았던 그 구름이어서 동심어린 추억이 뭉실뭉실 떠올랐다.


또 차창문을 모두 열고 넓은 평야를 바라보니, 하늘과 땅의 비율이 9대 1 이어서 회색빌딩으로 가려진 답답한 서울과는 차원이 달랐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먼저 K리조트 주변을 걸었다.


다리를 건너니 한때 시끄러웠던 '강정마을'이었고, 하천을 따라 좁은 오솔길을 몇분 걸으니 바다가 인접해 막혔는데, 그곳에 경계중인 군인들이 보였다.


그리고 차를 돌려 수백개의 계단을 따라 30분만에 '고근산오름(530mr)'에 올라 옅은 구름에 가려 신비로운 한라산을 보았고, 또 멀리 서귀포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정상에 서니 시원한 산바람이 흘린 땀을 금방 식혀주었고, 마치 강원도 곰배령에 와 있는 듯 초원이 넓게 펼쳐있어 조금 더 있으려니 추워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올레 7코스인 '돔베낭골' 둘레길은 다양한 색깔을 자랑하는 수국 천지였고, 열대우림같은 미로를 지나니 푸른 잔디위에 각종 예술조각품으로 꾸며진 멋진 카페가 있어, 그곳에서 바다를 무심히 바라보며 하루종일 쉬고 싶었다.


그리고 보목포구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한 후에, 깔끔한 분위기에 가성비까지 좋은 '오르바' 카페 창가에 앉아 바다를 쳐다보며 커피와 케익을 맛있게 먹었고, 오랜만에 즐겁게 얘기하며 알찬 시간을 보냈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까지 하루종일 비가 온다는 기상청예보에 우리는 여정을 변경해 서둘러 아내가 지난 2월 친구들과 간 후에 흠뻑 빠졌다는 '샤려니숲'으로 차를 몰았다.


30분쯤 한라산 방향으로 올랐을 때, 마치 허공에 분무질하듯 수증기가 바람에 몰려다니며 안개를 만들어 갑자기 50mr 앞이 안보이다가, 비가 오면서 어둑해져 시야는 10mr도 채 되지않아 정말 위험했다.


그냥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깜박이를 켜고 뒤따라 오는 차량들이 신경쓰였고, 왕복 2차선 외길이라 계속 앞으로 나갔다.


붉은오름 샤려니숲은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장대비에도불구하고 수십 대의 차량이 주차했고, 안으로 들어가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 데크길를 걸으니 안개때문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우리는 처음으로 우비를 입은 가족사진도 찍었다.


 ‘신성한 숲’ 혹은 ‘실 따위를 흩어지지 않게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라는 뜻인 '샤려니' 숲에서 상쾌한 삼나무 향을 맡을 수 없었지만, 대신에 비가 와서 더욱 운치있었다.


마지막 날 아침, 서귀포 칠십리에 숨은 비경 중 하나로 깊은 수심과 용암으로 이루어진,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쇠소깍'에 억수비를 맞으며 갔고, 또 일몰과 야경이 아름다운 '새연교와 새섬' 둘레길을 산보하면서 멋진 포토존마다 독사진, 가족사진을 남발했다.


이번 여행은 오름과 올레길을 하루 평균 12000보를 걷는 건강여행이었고, 전망좋은 곳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행복여행이었다.


그리고 대단한 미식가족도 아닌데, SNS에서 소개된 유명맛집을 찾아다니며 도장을 깨는, 식도락여행이었다.


특히 기억나는 곳은 전날 예약한 시간에 맞춰 방문했던 '오는정 김밥'과 모슬포항 '수눌음'의 고등어세트(회,구이,조림,탕)도 좋았지만, 보목포구에 있는 '김부자식당'에서 먹었던 갈치국은 평생 처음이라 잊을 수 없다.


이번 제주여행에 감사한 것은, 변화무쌍한 날씨에 맞춰 코스를 잘 조정한 것이고, 더욱이 앞이 안보이는 안갯속 우중인데도 굽이굽이 한라산 커브길을 아들이 침착하게 안전운전을 한 것이었다.


한편, 미리 확인하지않아 일부 가게가 휴무거나 일찍(8시) 문을 닫았지만, 계획에 없던 이중섭거리와 올레시장를 배회했고, 수국거리로 유명한 안덕면사무소까지 간 것은 또다른 수확이었다.


코로나 격리기간(최대 한달)을 거치는 해외여행은 결국 가지말라는 얘기인데, 올 가을 백신접종을 모두 마치면 그때 몇 나라를 여행할 수 있다니 무척 기대된다.


과거 제주도는 조선초기까지 '탐라국'이라 불렸고, 본토와는 다르게 아열대성 기후라 야자수 등 이국적인 식물이 많고, 특히 사투리(감수광 노래 참고)가 심해 같은 민족이라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도 상당하다.


"바람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도 많지요

감수광 감수광 (가시나요 가시려나요)

날 어떡헐랭 감수광 (날 어떡하라고 가시렵니까)

설릉사람 보낸시엥 가거들랑 혼조 옵서예 (서러운 사람이 보내나니 가시면 어서 돌아오세요)"


1970년~80년대 인기가수였던 혜은이가 부른  인기가요 '감수광'이라는 노래다.


또한 국내선이라 여권을 보여주는 등 복잡한 입출국절차는 없었지만 공항에서 신분을 확인하며 소지품검사를 했고, 비행기로 바다를 건너갔으니 나는 답답한 마음에 "탐라국이라는 섬나라로 해외여행을 했어!"라고 외치고 싶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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