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부산에서 신발사업을 크게 하는 군대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년이 되었고, 요즈음 어떻게 지내는지, 사업은 잘 되는지 궁금해서 모처럼 그의 사무실에 전화를 한 것이다.
그는 대뜸 "밥값을 안 낸 친구로군!" 하며 대꾸하였다.
나는 순간 최근에 그와 밥을 먹은 적이 없으므로 그가 나를 다른 친구로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했다.
분명히 나는 그의 목소리를 확인했으며, 더구나 이 친구는 내 목소리를 모처럼 듣고는 실수한 것으로 판단되어 나는 큰 목소리로 얘기하며 잠시 그의 반응을 살폈다.
이에 그는 군 시절 얘기를 꺼내면서, 내가 포병관측장교로서 GP 내에 그의 보병 소대에서 수개월 동안 파견 나가서 밥을 먹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20여 년 전 그와 지냈던 그때를 상기하며, 그의 재치 있는 말투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GP장으로 근무할 때, 나에게 "사병들에게 줄 술을 보온병에 몰래 담았다" 고 하여 나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특히 최전방 부대에서는 술은 절대 금지인데 어떻게 하려고 그런 짓을 하려고 했을까?
드디어 내무반에서 과자 파티를 열렸을 때, 그가 사병들 앞에서 보온병을 꺼내면서 하는 말이 "비록 보온병에 든 커피는 술이 아니지만 술이라고 생각하며 먹으라!"라고 한 것을 보고는 그의 여유로움과 유머감각에 반한 적이 있었다.
일찍 장가를 간 그의 결혼식에 나는 대전까지 원정을 가서 갓을 쓴 노인들이 앉아계신 앞에 서서 처음으로 결혼식 사회를 봤고, 그것이 경험이 되어 작년에 친구의 재혼식까지 10여 차례 사회를 보았다.
10여 년 전 부산 출장 시 그를 만나 바닷가 횟집에서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카페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얘기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부산이 연고인 그는 서울에 올 일이 거의 없고, 잦은 해외출장차 공항을 가다가 나에게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다.
그는 나에게 부산에 오는 것이 더 좋겠고, 그때 술 한잔하자며 전화를 마무리하였다.
나이가 들고 보니, 나에게 그런 정다운 친구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있어 좋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200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