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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Oct 06. 2021

지방시장선거 사무장

두어 달 전의 일이다.

충북에 있는 유명 코스닥기업(A)의 영업상무로부터 퇴근 무렵 전화가 왔다.

나는 처음에는 인사부장인 줄 짐작하고 알은체 하였는데, 그는 인사부장을 통하지 않고 나에게 직접 인사채용(해외영업부장)을 의뢰한 것이다.

이에 나는 영업상무께 잠시 착각한 것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후, 주섬주섬 퇴근 준비를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얼마나 급했으면 직접 전화를 한 것일까!

참고로 나는 작년에 그 회사를 처음 소개받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대리급 직원 한 사람을 입사시켰고, 얼마 전에는 연구원 한 사람을 추천했는데 그가 입사 당일 출근을 포기하여
몹시 당황한 적이 있다.

참고로 지방에 있는 회사는 여러 가지로 추천하는데 많은 핸디캡이 따른다.

비록 그 회사가 전망 있고, 복지혜택이 좋다고 해도, 지리적으로 불편하면 웬만해서는 후보자들이 가질 않는데,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명한 코스닥기업인 A사도 그런 회사였다.

다음날 아침 A사 인사부장과 통화를 했는데, 자기도 방금 그 얘기를 들었다고 하며 우리들에게 채용조건에 맞는 우수한 후보자를 추천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키가 크고, 미남형인 인사부장은 첫 만남 시 서로 호감을 가져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나는 서둘러 직원회의를 한 후, 다른 무엇보다도 A사의 후보자를 써치 할 것을 주문하였다.

그런데 막상 후보자를 접촉하다 보니, 회사도 조건도 모두 좋은데 출퇴근 거리가 멀어서 생각보다는 쉽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영업상무가 일부러 전화한 목적이 사라지고, 혹시 다른 써치펌이 후보자를 추천한다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이 분명하였다.

성격이 좋은 인사부장에게 나는 어떤 상황인지 슬쩍 문의했는데, 다행히도 우리 회사 외에는 다른 써치펌에 채용의뢰를 하지 않았고, 더욱이 우리가 그동안 보여준 태도 및 성과에 당연히 우리 인포브레인(현재 싱크탱크로 변경)에게만 의뢰한듯하여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왜냐하면, 국내에는 공식적으로 300여 곳이 넘는 써치펌이 있어 무척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갖고, 모든 채널을 동원하니 다행히 몇몇 후보자를 접촉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해외영업부장이란 직책은 유창한 영어 구사력, 리더십, 관련 지식 보유, 인성 등 고려할 것이 많았다.

직접 후보자들을 막상 만나보니 그들이 제출한 서류와 경력 차이가 났고, 영어실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전혀 영업체질이 아닌 경우도 있어 첩첩산중이었다.

모름지기 그들은 그 먼 곳(A사)까지 가겠다고 지원한 사람들인데…

참고로 우리 같은 써치펌도 아무 후보자와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채용조건에 맞는 후보자 중에 나름대로 엄선해서 인터뷰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간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가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종종 전시회, 세미나 등을 참관하며 유익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그 무렵 코엑스에서우연히 한 사람을 소개 받았고, 그 후보자는 A사의 경쟁업체에서 2년 전까지 근무했던 B였다.

나는 바로 다음날 B를 인터뷰했는데, 최근까지 개인사업을 하느라 영어가 다소 부족했지만, 믿음직스러운 인상, 깔끔한 말투, 전문지식 등 그동안 우리가 찾고 있던 그 후보자가 제 발로 찾아온 것을 확인한 것이다.

얼마 후, 우리가 추천한 후보자 2명은 영업상무 등과 면접을 했는데, 결국 B가 1차에 합격했다.

며칠 후 A사에서 부사장과의 2차 면접이 있다고 하며 면접시간을 잡아달라는 요청이 왔는데, B는 5월 31일 지방선거를 위해 어느 시장 후보자의 사무장으로 자원봉사하고 있어 바빠 전혀 면접에 응할 수 없다고 하여 양해를 요청해 왔다.

군대처럼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회도 ‘꽝’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약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잘 조율이 되어, 6월 1일 즉, 선거일 다음날 A사 부사장과 2차 면접을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막상 선거가 끝나면, 이기든 지든 술 한잔할 것이고, 그러면 고주망태가 될 것이고, 아니면 면접시간에 약간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그동안 쌓은 점수는 어떻게 되나 하고 지레 걱정이 앞섰다.

나는 다 잘 되다가 제사상에 재 뿌리는 것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5월 31일 밤부터 시시각각으로 방송되는 지방의원 선거뉴스를 통해 보니, 결국 B가 지원한 시장선거는 승리하였고, 다행히 그는 다음날 정시에 도착하여 부사장과의 짧은 만남을 이루었다.

말하자면, 부사장은 새로 부임할 해외영업부장이 누구인지, 사장께 소개되기 전에 10여 분간 차를 하면서 미리 인사를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 며칠 후, 마지막으로 사장은 B를 만난 자리에서 해외영업부장으로 잘 이끌어줄 것을 당부하였고, 그는 3차례의 길고도 짧은 면접을 통해 다시 40대 초반의 나이에 재출발하게 된 것이다.

나는 초롱초롱 빛나는 그의 맑은 눈을 기억하며, 그를 통한 A사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본다.

드디어 A사에 입사하는 그에게 나는 축하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는 출근일인 월요일 새벽 4시 한국과 토고전 축 구경 기을 끝까지 보고, 경기도 안산에서 차를 몰고 첫 출근 한다며 나에게 감사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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