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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Oct 11. 2021

조카와 조카딸

조카와 조카딸

"오늘 즐거웠고, 모처럼 작은 엄마와 사촌동생들 3명까지 한꺼번에 만나 정말 좋았어!"

이는 모친이 헤어질 때 나눈 정겨운 인사였다.

주룩주룩 가을비가 제법 내리던 어제, 경기도 기흥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삼겹살에 대하구이, 막걸리 그리고 커피와 과일을 먹으며 정오부터 장장 4시간 동안 얘기하고, 웃느라 배꼽이 빠질 지경이었다.

10년 전에 뇌졸증으로 돌아가신 작은 외할아버지는 3형제를 두셨는데, 그중 첫째 아저씨 A가 동생 B와 C를 불렀고, 나도 매제를 초대해 7명이 정감이 넘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빗방울 엔진 소리를 들으며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것이다.

처음에는 용인 수지에 있는 식당에서 아저씨 A와 작은 외할머니, 나와 모친  4명이 식사하기로 했었는데, 참석인원이 갑자기 늘어 장소가 바뀌었고, 주소를 확인해보니 언젠가 한번 방문했던 아저씨 A의 물품창고였다.

몇 년 사이에 1,000평이 넘는 넓은 땅에는 전천후 테니스장이 지어졌고, 모퉁이 땅은 가지, 고추. 배추 등을 심었으며, 그 옆에 비닐하우스는 비록 허름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아지트를 만들었다.

지금도 수시로 연락하며 안부를 묻지만, 어제 모임은 집안 대표 선수끼리 만나 왁자지껄하고, 허심탄회하게 즐긴, 평생 잊지 못할 야외파티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와 모친 모두 항렬상 아저씨 A와 작은 외할머니 보다 각각 3살이 많지만, 조카와 조카딸의 관계였다.

모친은 동갑인 작은 외할아버지를 언급할 때마다 어렸을 때 경험담을 꺼내신다.

장난기가 많은 작은 외할아버지는 일부러 모친의 발을 밟고 지나가 모친이 "왜 그래요?" 하면 시치미 뚝 떼며 "내가 뭘?" 하며 놀렸고, 또 모친이 몰래 숨겨둔 삶은 옥수수를 훔쳐먹었다며 지금도 웃으며 얘기하신다.

아담한 키에 80kg에 육박하는 건장한 체격, 항상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스마일 달마대사가 연상되는 아저씨 A는 골프가 싱글인데, 코로나 이전까지 중국을 오가며 무역을 했고, 집안 대표 미남이자 자칭 백수라는 둘째 B는 개그맨 빰치는 입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었으며, 셋째 C는 막내이자 공무원답게 조용히 고기를 구우며 서비스했다.

작은 외할머니는 2년 전에 설암 수술을 받았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완쾌되었고, 지금도 건강을 위해 즐겁게 일을 하신다.

모친의 간병인 겸 운전기사인 나는 모친의 병환 얘기부터 가족, 친척 소식까지 전했는데, B는 우리가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살았을 때의 세세한 기억까지 꺼냈고, 하일성(야구해설위원)씨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처음 들어 황당했지만 재미있었다.

모친은 처녀시절에 2~3살 위인 새 외할머니(모친의 새엄마)에게도  '엄마! 엄마!' 하며 따뜻하게 대했고, 외가의 최고령자로 활달한 성격답게 친척들과 수시로 연락하며 우애를 돈독히 하셨다.

그래서 남들은 가족, 친척간에 금전문제 등으로 금이 가는데, 모친은 중심에 서서 화목을 중요시하였고, 그것은 존경받을만한 일이어서 우리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모친은 사촌동생인 아저씨 A, B, C의 이름을 부르려다 헷갈려, 나는 머리숱이 없는 순서로 하면 된다고 농담하며 좌중을 웃겼다.

결혼한 지 어언 30년이 되어가는 매제는 내 대신 술상무가 되어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외가 쪽의 왕조카인 나는 다른 친척들보다 아저씨들과 친했고, 특히 아저씨 A와는 거의 매일 카톡으로 서로 좋은 글과 그림을 보내며 허물없이 잘 지내고 있다.

만일 어제 식당이나 카페에서 모였다면, 2차 백신까지 대부분 맞았지만 인원이 많았고, 시끄럽게 수다를 떨 수 없었는데.... 아무튼 시계도 이미 4시를 넘어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할머니는 어느새 밭에서 땄는지 고추와 가지 한 움큼, 배추 2포기를 바리바리 싸주셨고, 아저씨 A는 두툼한 봉투를 모친께 드렸다.

어렸을 때 외가에 갔을 때, 같이 뛰어놀던 아이들이 50년을 훌쪅 뛰어넘어 지금은 중년 아저씨와 조카로 만나 옛 얘기를 나누니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한다.

그런데

그 당시 나에게 예쁘다며 치마를 입히고, 머리에 보자기를 씌운 채 여장하고 동네를 누비게 했는데, 그것을 아저씨들은 알고 있을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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