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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Oct 18. 2021

택시비 만원

택시비 만원

"이렇게 착한 분들이 어디 있나!  돈을 안 받으시네! "

매일 오후 5시쯤 노인대학(주간보호센터) 이용을 마치고 집에 도착할 때마다, 모친이 차에서 내리면서 택시비로 만원 지폐를 꺼내며 하신 말씀이었다.

이에 나는 그분들은 노인대학에서 모친을 위해 일하는 여직원들이며, 모녀 택시기사가 아니라고 수 없이 말씀드렸지만 허사였다.

또 택시기사는 특이한 유니폼을 입은 남자들이 대부분인데, 보라색 간편복을 입은 여자들과 구분이 안되시냐고 되물었다.

그러면, 모친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서, 왜 나에게 잘해주느냐?  마치 사기꾼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노인대학에 이미 등록금을 냈으며, 거기에는 왕복 교통비(봉송 서비스), 점심식사, 그리고 노래, 춤, 그림 그리기 등 각종 교육 프로그램 비용이 모두 포함되었다며 알기 쉽게 설명드린다.

두 달 전에 모친이 처음 노인대학에 갔을 때 손가방이 분실된 줄 알고 벌인 해프닝(결국 안 갖고 감)을 잊을만할, 지난 주였다.

"나도 여자야!" 하면서, 오랜만에 입술에 루즈를 바르려던 모친께 나는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고, 또 마스크가 더러워지니 안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러면 반지는 끼고 가야지!" 하고 고집을 부려 언젠가 손가락을 보니 퉁퉁 부어 반지가 빠지지 않았고, 비눗물을 묻혀 겨우 빼보니 손가락 아래 피부가 심하게 벗겨져 있었다.

그 후 나는 엄지손톱만 한 커다란 반지는 특별히 외출하거나, 결혼식 등 집안 행사가 있을 때나 끼고, 평소에는 집에 놔두고 가는 것이 좋겠다며 설득하였다.

그리고 "여기 자~알 보세요!"

오늘은 손가방도 없고, 반지도 끼지 않았습니다!" 하며 수차례 확인하고 이해시킨 후에, 모친을 노인대학에 보내드렸다.

그런데 그날 또 해프닝이 일어났다.

집에서 편히 쉬어도 최고혈압이 160~170인 모친이 노인대학에서 돌아오자마자, "오늘 쓰러질 뻔했다!" 라며 격한 감정을 누르셨다.

동행했던 여직원에게 즉시 상황을 물어보니, 애지중지하며 수십 년 끼고 있던 반지가 없어져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 빼 간 것 같다며 흥분하셨다고 하였다.

과체중에 고혈압 환자인 모친이 이런 일로 만일 쓰러진다면, 생각만 해도 정말 아찔했다!

즉시 나는 모친을 안정시킨 후에 방에서 반지를 찾아 보여드리니 "아! 오늘 내가 큰 실수를 했네! "하며 당황하셨다.

모친은 요즘도 "오늘 남대문시장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라며 엉뚱한 얘기를 하셨고, 그렇지 않다며 내가 노인대학에서 보내온 사진을 보여드리면 이것을 언제 찍었느냐 하시며,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신다.

~~~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오늘 마포 집을 방문해 모친과 겨울 옷가지를 챙겼다.

모친은 마포에 오래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셔서 겸사해서 찾아간 것이다.

힘들게 4층 계단을 오른 후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과거 27년간 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안방 장롱에 예전 그대로 옷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을 보신 모친은 감격하셨고, 더구나 건넌방 벽에 부친의 사진을 보시고 "저 양반이 고생만 하다가 너무 빨리 가셨다. 더 오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하셔서 곁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나의 마음을 울리셨다.

다소 싸늘한 날씨였지만, 모친과 둘이서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고양시 서오릉 일대를 드라이브하였고, 맛있게 식사하며 하루 종일 함께 하니 행복이 따로 없었다.

오늘도 모친은 "내가 너를 낳고 키웠는데, 지금은 반대로 네가 나를 보살펴주는구나!  이런 게 인생이지!" 하시어 나는 노무현 대통령 특유의 코믹한 어투로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응답하면, 그것을 똑같이 따라 하며 웃으신다.

오늘같이 정상적인 날이 모친에게 계속되기를 바라며, 앞으로는 귀가할 때 동행한 여직원들에게 이렇게 얘기하시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 무리일까!

"택시비는 공짜 맞지요?"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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