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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Oct 24. 2021

최진사의 죽음

최진사의 죽음

오래전 '웰다잉(well-dying)이라는 용어를 접하고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내 주위의 지인들이 하나 둘 하늘나라로 떠나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그동안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자는 웰빙(well-being)과 함께 지금은 ‘웰다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즉, 삶을 잘 정리하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면서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자는 의미다.

영화배우 남궁원처럼 잘 생겼던 큰외삼촌이 엊그제 돌아가셨다.

치매에 걸린 큰외삼촌이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한동안 찾아뵙지도, 또 전화도 자주 드리지 못해 죄송했는데 그만 83세로 세상을 하직하신 것이다.

최근에 큰 외숙모가 뇌경색을 앓고 있는 모친에게 전화하셨을 때, 나와 모친 모두 큰외삼촌을 바꿔달라고 해서 목소리라도 들었어야 했는데 정말 아쉽다.

금요일 밤에 큰외삼촌의 부음을 접하고 즉시 동생들에게 연락하면서, 나는 바로 아래 남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으면 큰일이라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모친에게는 나중에 알려드릴까 고민했다.

그렇지만 토요일 아침에 모친의 상태를 보면서 넌지시 꺼냈다.

모친은 처음에 눈을 번쩍 뜨며 놀라시더니 잠시 마음을 진정하고는 "이번에는 가야겠구나!  착한 동생이었는데..."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10년 전부터 치매를 앓았던 이모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전전하다가 지난 5월에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모친이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로 장례식장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지금 되돌아보면, 모친은 가끔 병문안할 때마다 얼굴이 반쪽이 된 육신은 물론 정신까지 황폐해 동생도 못 알아보는 이모를 보시고 비참한 느낌을 많이 받으셨다.

아무튼, 섣불리 얘기했다가, 모친까지 삼 남매가 올해 줄초상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고 우려했는데 다행이었다.

모친 4남매는 각 3살 터울인데, 멀리 캐나다 토론토에 사시는 작은 외삼촌만 빼고, 공교롭게도 이모, 모친, 큰외삼촌이 모두 치매라 가족력이 의심되었다.

키 170cm, 90kg 비만에, 당뇨병까지 있었던 큰외삼촌은 오래전에 심장수술을 받았는데 그것이 이번에 재발되어 돌아가셨는데, 젊었을 때 힘이 장사라 나와 내 동생이 양팔에 매달려도 거뜬히 들어 올렸고, 또 팔씨름에서 져 본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농사를 지으며 짬짬이 서예에 심취하셨고, 15년 전에는 자비로 최진사의 명담 집(350페이지)을 발간하셨다.

그 책에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성경 말씀부터 살아가는데 요긴한 명담 수백 개를 정리했는데, 큰외삼촌이 쓰신 '옛 동산'이라는 시를 지금 읽어보니 내 가슴이 애절하다.

우연히 만나 옛 동산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감회가 서리는구나
어렸을 때 놀던 동산은 옛 모습이건만
세월 따라 강산 따라 우리들 모습도 많이 변했네
이곳에서 놀던 소꿉동무는 여기저기 살건만
옛 시절 그 모습이 눈에 잠기네
옛 동산 옛터에 살던 내 친구들은 어디에 사는지
고향산천 못 잊어 그리워하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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