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높지않으나, 젊은 산이라 바위가 날카로워 조심해서 등산해라!"
엊그제 등산매니아인 친구가 나에게 한 조언이었다.
죽기전에 해야할 버킷리스트로서 최근에 지리산을 당일치기로 등정했지만, 그때 하도 고생해서 다시는 1000미터 이상 높은 산은 케이블카를 탄다면 모를까 절대 올라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아직 가보지못한 산을 찾다가 생각한 것이 경기도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동두천에 있는 소요산(587mr)이었다.
주변의 친구들 모두 올라갔다기에, 나는 코로나때문에 만나지 못한 몇 고교동기들에게 연락해서 1주일 전에 결정한 날이 어제 토요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황사와 미세먼지 얘기가 나와, 창밖을 보니 일기예보대로 너무 심해 고민했지만 어렵게 잡은 계획을 취소할 수 없어 강행했다.
그렇지만 유달리 민감한 한명이 불참해, 우리 셋은 오전 10시 소요산역에서 만나 초입에 있는 산림욕장코스로 올라갔다.
4시간 20분만에 천왕봉(1915mr)을 등정한 내가 소요산은 2시간이면 가뿐히 올라갈 수 있다고 하기에, 사전에 소요산에 대한 정보도 없이, 목높은 등산화 대신에 트레킹화를 신고, 아스팔트길을 따라 일주문을 거쳐 편하게 올라가면 될 것을 다른 두친구의 의견에 따라 하,중,상 백운대 방향으로 오른 것이 화근이었다.
1~2분도 안되어 급경사였고, 능선에 오르니 한 친구가 우리 반대쪽에 소요산 정상이 있다고 하여 엄두가 안나 다시 내려갈 수도 없어 한숨이 나왔다.
거기에 바위까지 마치 칼을 들쭉날쭉 세워놓은 것처럼 날카로워 걷는데 위험했고, 그러다 보니 등정 2시간에 맞춘 나의 체력은 저하되었고, 정신력 또한 그에 비례하며 시간이 갈수록 지쳐갔다.
말로만 듣던, 500미터 가까이 이어진 칼바위능선에 오르니 소요산의 압권이었고, 내가 동네 뒷산처럼 올랐던 남산, 안산, 그리고 인왕산과는 차원이 다른, 무척 젊은 산인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급경사 계단에서 쉬고 있는데, 밑에서 힘있게 오르고 있는 미군병사가 나에게 웃으며 다가와 그가 신고 있는 랜드로바를 보여주었다.
아니! 저 신발을 신고 오르다니, 내가 지리산을 무모하게 올랐을 때 등산화때문에 큰일날 뻔 했던 일이 떠올랐다.
미국 테네시 내슈빌에서 왔다는 그는 대구 달성산도 올랐다며, 나처럼 소요산은 처음이라는데 젊은이답게 밝고 유머가 넘쳤다.
그를 뒤따라 능선을 오르내리다 보니 앞에 큰 산이 있어 거의 다 왔구나 생각하였고, 젖먹던 힘까지 내어 가보니 그곳은 나한대(571mr)였다.
아~ 뿔~ 싸!
허탈해진 마음을 추스리며,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아직 한시간 정도 남았고, 거리는 1.4km라고 하였다.
첩첩산중이었다.
드디어 저질체력인 나의 모습이 드러나는 시간이 되었다.
"나중에 또 오면 되지" 하면서 그냥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어떤 여자분이 "여기까지 왔는데 안올라가세요?" 하면서 나를 자극했다.
"그래! 집에서 2시간 전철을 타고 멀리 이곳까지 왔는데 언제 또 오겠어!"
이미 방전된 체력을 초코렛으로 보강한 후에, 정상을 정복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올라가니 의상대(587mr)가 나타났다.
지친 몸을 비석에 기대앉아 사진을 찍으니, 어떤 분이 공주봉이 정상이라고 했는데 주변에 아무리 둘러봐도 의상대 보다도 더 높은 곳은 없었다.
즉시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의상대가 정상이었고, 표지석에 '소요산 정상'이라는 글자만이라도 표시해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무려 3시간 만에 의상대를 정복하고 내려가니 그때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렸고, 산바람까지 시원해 땀으로 젖은 몸을 말려주었고,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공주봉(526mr)까지 완전히 도는 것이 소위 '소요산 상급코스' 인데, 그곳에서 바라본 풍광이 최고라고 하지만 너무 지쳐 포기했다.
그리고 산중턱에 앉아 때를 놓쳐 허기진 배를 과일로 채웠고, 손이 시려울 정도로 찬 계곡물로 얼굴을 씻었으며, 경치 좋은 곳에서는 기념사진도 찍었다.
시간날 때마다 등산하고, 매달 200km를 달린다는 친구A도 대단하지만, 조만간 불수사도북(불암산,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강북에 있는 5곳 산을 24시간내 종주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교 마라톤동호회 신기록 보유자인 친구B의 얘기를 들으니 강철체력이 따로 없었고, 부러웠다.
나처럼 짧은 시간에 정복을 목표로 등산하는 것 보다 이번 소요산 순환코스처럼 몇시간에 걸쳐 천천히 오르는 것이 체력부담이 적다며 그는 철인 3종경기 선수처럼 나에게 말했다.
오후 3시, 최초 올라가려던 일주문을 나는 패잔병처럼 통과하며 장장 5시간에 걸친 소요산 등정은 무사히 끝났다.
집에 돌아와 소요산의 의미를 찾아보니, 과거 서화담, 양사언과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고 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소요 [逍遙]하다는 "마음 내키는 대로 슬슬 거닐며 돌아다닌다"는 의미인데, 그 당시 변변치못한 복장으로 제법 높고 바위까지 험한 산을 소요하며 올랐을까 심히 의심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