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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Nov 15. 2021

산과 같은 친구

예약하지 않아도 돼
그 친구 만나려면

언제 어느 때
불쑥 찾아가도
어색한 빛 없이
초록빛 웃음으로  
반기는 친구거든.

눈치 보지 않아도 돼.
그 친구 만나서는

나무 꽃 새 벌레 우리들
잘 나거나 못나거나
저울질하지 않고
편안한 그루터기로 만나주거든.

외로워하지 않아도 돼.
그 친구 만나고나서는

철마다 옷은 갈아 입을지언정
본연의  마음빛은 잃지않는
늘푸른 소나무 같은 그 친구는
내게 묵직한 속마음도
잘 들려주거든.

오르는 일이
얼마나
숨차고
벅찬 일인지!
내려가는 건  
또 얼마나 엄두가 안 나고
두려운 일인지!
그러나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가야 한다는 걸
묵묵히 보여주거든.

그래서
오늘도
나는
고개 숙인 채
친구를 만나러
오르고 또 오르곤 하지.

겸허히
비우고 내려오는 법을
배우기 위해...

내 여동생이 쓴 '산이라는 친구는.,'라는 시다.

나는 이 시를 보고 감동했고, 여동생이 글재주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산을 '친구'라고 생각해 보면 색다른 맛을 느끼게 되는데, 예약하지 않아도, 불쑥 찾아가도, 또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친구가 내 주변에 몇 명이나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학창 시절부터 내 주변에는 친구가 많았고, 그들은 내가 전화하면 흔쾌히 반겼다.

그런데 그들은 안타깝게도 내 곁을 하나 둘 떠났다.

친구 A는 30여 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갔고, 10년 전에는 B와 작년에 C 모두, 자니윤이 노래한 '마지막 외출' 가사처럼 가을날에 약속 없이 바람처럼 하늘나라로 떠났다

늘 영원한 친구라며 언제까지 함께할 줄 알았는데, 삶을 이야기하며 웃고 행복했는데...

얼마 전에 친구 D와 만추의 단풍이 아름다운 남산 둘레길을 걸었고, 명동에서 식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뇌경색을 앓고 있는 모친 때문에 내가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어 미안했고, 서로 수 차례 전화한 끝에 만나 더욱 반가웠다.

배려심이 깊은 그는 나에게 늘 푸른 소나무였고, 또 편안한 그루터기가 같아 신입사원 시절의 에피소드부터 최근 일상생활까지 대화하는 그 시간 내내 즐거웠다.

또 어제는 볼 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가 전화해 친구 E를 불렀는데, 우리 둘은 체형, 성격, 식성, 취미 등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아 내가 브로망스라고 칭했는데, 그는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해외여행을 가겠다며 나름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부부동반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남프랑스, 그리고 루마니아 등 동유럽에 가려는데, 그는 호흡이 맞다며 우리 부부를 여행 동반자로 지목해 놀랐고, 기분이 좋았다.

그것이 언제 실현될지 모르나, 내 좋은 친구와 해외여행은 아니더라도 명동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2층 커피숍이거나, 싸늘한 거리를 휘젓고 들어간 분위기 있는 왕십리 어느 카페든 나는 그들과 함께 있어 외롭지 않았다.

방금 친구 F가 커피 한잔하자며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전화했다.

작년 이맘때 아픈 아내의 건강을 위해 경기도 양평 전원주택으로 이사 간 그는 아들이 독일 유학 중이라 '산'이라는 진돗개 한 마리와 셋이서 살고 있다.

주말이라 차가 막혀 갈 수가 없고, 그렇다고 지하철로 이리저리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라 나중에 시간이 되면 가겠다고 약속했다.

가깝다면, 그의 집 넓은 잔디밭 끝에 있는 탁자에 마주 앉아 화로에 불멍 하거나,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부용산을 바라보며,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진 그가 만든 부드럽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 제격일 텐데 아쉬웠다.

세월 따라 인연이 달라지고, 사람도 변한다지만, 내 주변에는 다정다감하고, 편한 친구들이 있어 그동안 잘 살아왔고, 남은 인생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올 겨울은 예전과 달리 무척 춥다는데, 그들이 내 곁에 있어 따뜻할 것 같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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