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해외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를 10일간 안내한 가이드는 해박한 역사 지식, 성실성과 책임감, 그리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20여 명의 여행자를 빈틈없이 돌보는 강인한 체력 등을 고려할 때 비록 여성이었지만 가이드로서 크게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단 하나, 그녀의 말버릇 때문에 민감한 내가 동행하는 내내 피곤했다.
말하자면, "00입니다" 하면 될 것을 그녀는 말끝마다 1분에 평균 대여섯 번이나 "00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심지어 나름 겸손하게 얘기한다며, 어떤 때는 느리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여 나는 그녀의 얘기에 집중할 수 없었고, 짜증이 났다.
그러다 보니, 처음 하루 이틀은 버텄으나, 나중에는 신경쇠약에 걸린 듯 아예 귀를 막고 포기하는 심정으로 흘려듣게 되어 여행을 망칠 지경이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주로 백화점이나 식당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젊은 여직원들이 "00 하고 가실게요!"라고 하지 않는가!
이게 무슨 말인가! 명령형도 아니고, 그렇다고 청유형도 아닌 어정쩡한 단어가 어느새 새로운 말투로 자리 잡았다.
그냥 "00 하고 가세요!" 하면 될 것을 애교스럽게 얘기하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했고, 원칙주의자라서 그런지 지금도 그런 말을 들으면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최근에 편의점에서 어떤 손님이 들어와 계산대에 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물건값으로 지폐와 동전을 던졌다는 인터넷 기사를 봤다.
이것은 아직도 "손님은 왕이고, 갑이다"라고 우기는 몰상식하고 비겁한 사고를 가진, 일부 사람들이 벌이는 추태라고 생각한다.
그들 종업원이 왜 화풀이 대상인가! 엄연히 누구의 아들, 딸이고, 그리고 조카인데 어떻게 그들을 무시하며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개발된 것이 AI 로봇 아닌가!
유명한 식당에 가면 로봇이 서빙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신기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로봇은 감정노동자인 인간과 달리 사전에 입력된 말과 행동만 할 수 있고, 비싼 인건비도 절약할 수 있어서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런 로봇에게 돈을 던지면 안 받으면 되고, 욕을 하면 맞대응하거나, 혹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며 타이르듯 얘기하고, 또 이상한 말과 어투로 주문하면 정중히 "표준어로 다시 말씀해주세요! "라고 얘기하면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우리의 조상인 의안대군(이화, 이성계의 이복동생) 산하 영천군 종중 시제가 충남 부여 무령사에서 있었다.
코로나로 많은 종원이 오지 않았지만, 전국에서 오신 30여 분의 나이가 평균 75세는 되어 보였다.
각파의 종손들은 전통복장으로 예의를 갖췄고, 시제를 진행하는 집사자는 이성계 태조대왕의 주 무대가 현재 북한이었다며 당시 함경도 지역의 관습례에 따라 시제를 치렀다.
나이가 많은 다른 지역의 종원들과는 달리, 60대 중반의 우리 5명은 마치 물찬제비처럼 보였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단체로 움직이며 어르신들께 예의 바르게 대하여 여러모로 눈에 띄었다.
내가 너무 튀는 것 아니었냐고 웃으며 얘기하니, 나보다 2살 위인 종손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우리가 "공순(恭順) 할아버지 자손이니, 말과 행동에 모범을 보이고, 모두 공손(恭遜)해야지요!"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