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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Dec 01. 2021

딸이 결혼하다



우리 딸이 드디어 결혼했다.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구입 등 3포 세대 혹은 5포 세대를 운운하며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딸아이도 옛날 같으면 노처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나이가 찼는데 한동안 짝을 못 찾아 마음고생이 심했고, 나 또한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 자식 결혼시키는 것을 보고 은근히 부러워했고, 때를 놓치면 어떻게 하나 마음 졸였다.

그러다 보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보배 덩어리'가 어느새 '애물단지'가 되었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
겨울에 태어난 사랑스러운 당신은
눈처럼 맑은 나만의 당신

하지만 봄 여름과 가을 겨울
언제나 맑고 깨끗해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당신의 생일을"  

가수 이종용이 부른 '겨울 아이'는, 나와 딸 모두 '겨울 아이'였기에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훈훈하고 상큼하다.

딸이 첫돌 사진을 찍을 때의 일이다.

졸려 꾸벅꾸벅하는 것을 "유민아! 까꿍!" 할 때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쳐들며 10여 차례 까르르 옹알거렸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고, 그 비디오를 볼 때마다 가족 모두 웃음꽃이 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꼬마가 운동장에서 많은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뛰어나와 교장선생님 앞에서 엉거주춤하게 서서 상을 받던 모습은 멀리서 봐도 웃음이 나왔다.

노래와 춤을 잘했고, 걸스카우트 하면서 단체생활에 잘 적응해 사회성이 컸으며, 학창 시절에 쓴 글씨가 너무 예뻐 마치 인쇄한 것 같았고, 정리정돈도 완벽해 누가 잘못 놓아도 금방 알아차릴 정도였다.

결혼식 전날 동네 공원을 산책한 후에, 가족과 카페에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딸아이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아빠가 아침잠을 깨우는 노랫소리가 그리울 것 같다고 하였고, 아들 녀석은 누나가 독차지했던 멸치 아몬드 볶음은 지금부터 내 것이라며 웃으며 얘기했다.

그동안 혼수 준비하느라 고생했던 아내는 큰 숙제를 마친 듯이 시름을 놓았고, 나는 가족과 즐거웠던 추억을 공감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이번 결혼식은 코로나 때문에 인원 제한을 했던 얼마 전과는 달리 완화되었지만, 최근에 4천 명까지 확진자가 급증하여 정부에서 비상조치를 취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토요일 오후 5시 예식이라 예상인원보다 하객이 줄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영상 5도의 날씨였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그다지 춥지 않았고, 눈과 비가 오는 궂은 날씨가 아닌,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도 딸아이의 결혼식을 도와주었다.  

그렇지만 집에서 아이와 손을 잡고 행진했던 연습은 실전에서 발이 꼬이면서 엇박자가 났고, 가족사진을 찍는데 내가 긴장해 표정관리가 안되어 신경 쓰였지만, 예식은 순조롭게 끝났다.

가수 김광석이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가사를 되새긴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새우던 밤들도", 그리고 "딸아이 결혼식 날도" 모두
지나갔다.

제목처럼 우리 부부는 60대가 맞지만,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울 정도로 노부부는 전혀 아니다.

딸아이가 쓰던 빈 방을 바라보며 느낀 쓸쓸한 심정은 지울 수 없지만, 신혼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며 도착 인사를 전하는 아이들의 밝은 얼굴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장인어른!  우리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휴대폰 너머 목소리가 낭랑하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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