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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구멍가게

구멍가게



얼마 전에 강남역에 있는 스페이스22에서 임응식 사진작가 전시회를 다녀왔다.



내가 그곳에 간 이유는 사진에 남다른 취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1950년대 초 명동에서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젊은 남자가 ‘求職(구직)이라 쓴 팻말을 허리춤에 묶고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궁핍한 시대를 대변하는 그런 사진들만 보러간 것도 아니다.



내가 5학년때 도심공동화현상으로 청계초등학교가 폐교될 때까지 을지로입구에 살아, 지금은 외환은행 본점으로 변한 옛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넓은 광장과 화려했던 명동 일대가 내 놀이터였다.



그러다 보니, 가난하게 살았던 청계천 판잣집 코흘리개 시절을 잊을 수 없어 시간이 나면 옛자취를 느끼려고 그 시절 영화를 보거나 관련 전시회를 찾곤 한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6.25전쟁 전,후에 서울과 부산 등에서 빈곤했던 삶을 사진으로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내 앞마당으로 여겼던 그 당시 명동과 청계천을 찍은 사진을 내 어릴 적 기억과 비교하며 마냥 쳐다보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그 중에 한장의 작은 사진 앞에서 느릿느릿 걸어가던 발길을 멈췄고, 까마득한 옛기억이 떠올라 살짝 흥분되었다.



낡은 마차 위에, 두툼한 널판지로 그럴듯하게 좌대를 꾸민 구멍가게에서 남루한 소녀가 손님을 기다리며 머리카락을 만지는 사진이었다.



구멍가게를 떠받치는, 이가 빠진 바퀴는 전혀 구를 것같지 않았고, 만일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제법 구색을 갖추어 정돈된 물건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더구나 그 소녀가 비싸보이는, 다양한 물건값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잠시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려면 어떻게 가게를 놔두고 가는지 궁금했다.



내가 5학년때 일이다.



부친이 청계초등학교 후문에서 가죽제품 장사를 하셨는데, 모친은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동네어귀에 구멍가게를 냈다.



베니어판으로 만든 한평 남짓한 하꼬방가게는 바퀴가 없는 고정식이었고, 양해를 얻은 후에 '박노창'이라고 기억되는, 내 친구네 집문 옆에 세웠다.



가게구조는 사진과 흡사하나, 뒷문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 손님을 상대하며 주로 빵, 과자 등 식료품을 팔았다.



모친이 잠시 자리를 비울 때에는 내가 가게주인이 되어 그 당시 한창 유행했던 삼립크림빵을 주변 인쇄소 직원들을 상대로 팔아 재미를 봤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볼까 창피해서 얼굴도 못내밀었는데, 한두번 해 보니 별 것이 아니었고 나름 상술도 늘었다.



저녁이 되어 장사를 마치면 그동안 가게안 좁은 공간에서 뒹굴며 기다린 어린 동생들이 팔다남은 빵 좀 먹자고 야단이었다.



결국 무허가건물이라 한달도 못버티며 비싼 댓가를 치렀는데, 비록 시간 차이는 나지만 사진 속의 그 소녀와 나는 동병상련이라 마음이 뭉클했다.



이번 사진전은 전쟁 당시와 후의 처절한 상황과 가슴 아픈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지만, 내 어릴 적도 그다지 풍족하지않아 보는내내 정말 감동이었다.



~~~~~~



''지금의 롯데백화점 자리에 공립도서관이 있었는데'' 



이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쓴 ''그 많던 싱아는 다 어디 갔나''에 나온 글이다. 



내 어릴 때 을지로 입구에 살면서 공립도서관을 다니며, 숙제를 하거나 동화책을 읽곤 했다. 



흙갈색 나무판자로 울타리를 쳤던 공립도서관과 유리창이 많은 그곳 출입문의 기억이 생생하다.



오늘따라 박완서선생의 글을 읽고싶다.


글쓴이: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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