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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비가 오는 날에는 양탕국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죽을 때 억울하면 어쩝니까. 되돌릴 수도 없는데. 인생은 마라톤이에요. 100미터 1등 하면 뭐 합니까. 그러려면 건강이 제일 중요합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나왔던 기사인데, 성공한 CEO였던 그분이 50대 초반에 농부가 되어 6년째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 그는 “나는 남들보다 빠르게 살았고, 빠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지금 행복할 것.”이라고 얘기하여 나의 생각과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내 주변의 지인들 상당수가 젊었을 때 건강관리를 등한시해서 지금 열심히 운동을 하고, 꾸준히 약도 먹으며 건강을 회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신체적인 건강 못지않게, 정신적인 안정이 소중함을 깨닫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 가능한 즐겁고 재미있게 살려고 한다.


그래서 어제 토요일 아내와 모처럼 대학로에서 식사를 하였고, 낙산공원을 산보한 후에, 창신동 산모퉁이에 있는 '낙타 카페'에서 서울시내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최근에 아내는 친구들과 2박 3일 지리산에 갔는데, 하루는 7시간 둘레길을 걸었다며 자랑하여, 나는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당일치기로 지리산 천왕봉을 등정한 남편에, 걸맞은 아내라고 맞장구쳤다.


주말이었지만 그냥 빈둥거리는 것이 뭣해 집을 나섰는데, 대학로에 도착하니 일기예보와는 달리 비가 오락가락하여 길거리에서 우산을 샀다.


우리는 졸지에 영화 'Singing in the rain'  남녀 주인공이 되었고, 작은 우산이라 비를 피하려 어깨동무를 한 채로, 젊은이의 거리인 대학로와 낙산공원을 산보했다.


어릴 때부터 비가 오는 날에는 친구들과 우산을 맞대고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낙산공원은 고풍스러워 낭만이 있고,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과 성곽 야경이 멋이 있어 자주 찾는다.


시끄러운 시내를 벗어나 계단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니 한적했고, 다소 경사진 성곽길을 아베크족처럼 느릿느릿 걸으니 영화배우가 따로 없었다.


우리는 지리산을 사랑하는 산악인으로서 가볍게 낙산공원을 산책한 후에, 창신동 채석장 전망대로 유명한 '낙타 카페'로 향했다.


얼마 전에 우연히 알게 된 그곳을 동묘역에서 10분 정도 좁은 골목길을 따라 힘겹게 올라갔는데, 어제는 낙산공원 정상에서 제법 큰길을 따라 내려가 쉬웠고,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카페에는 손님이 없었다.


우리는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비가 와서 더욱 운치 있는 강북 일대를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셨고, 지리산 둘레길부터 건강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눈 후에 옥상에 올라갔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땀을 씻어주었는데, 어제는 비가 그친 뒤라 다소 추웠지만 맑게 개인 하늘과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는 동네를 바라보니 느낌이 더 새로웠다.


우리는 미로 같은 창신동 봉제 골목길을 내려와 백남준 기념관에 들렸고, 전위예술가로서의 그분의 행적과 기행을 얘기하며 동대문 DDP로 갔다.


어떤 CEO처럼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농부는 아니지만, 우리는 건강을 위해 15000보를 걸었고, 멋진 카페에서 고종황제처럼 품위 있게 양탕국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제 또 나의 추종자로 자처하는 K 박사의 답글이 나를 웃음지게 했다.


그는 아내와 과천에 있는 카페에서 오붓하게 커피를 하고 있다며,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연락이 왔다.


"창신동 낙타 카페에서 아내와 양탕국을 먹고 있다."


"뭐!  양탕국이라고?  그게 뭐야?"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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